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나는 분명 존재하지만 어제의 나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라는 모토 하에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있다. 김석중이라는 본명 대신 물아일체, 즉 나와 다른 사람이 결국은 모두 하나라는 뜻을 넣어 만든 이름을 예명으로 쓰고 있는 김아타(1956~)다.
김아타의 ‘온에어 프로젝트’는 그의 철학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중 ‘8시간’ 시리즈는 카메라의 조리개를 8시간 동안 열어놓고 찍는 장노출 기법을 사용한 사진작품이다. 그는 뉴욕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의 모습을 담기도 하고 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인 DMZ를 찍기도 했다. 장노출 된 시간동안 움직이던 존재들은 한장의 사진으로 남았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단지 잠시 머물었던 흔적을 먼지처럼 남길 뿐. 김아타는 “‘온 에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이 세상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라고 말한다.
그는 얼음으로 조각을 만들어 그것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장노출 기법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아이스 모놀로그’로 불리는 이 시리즈에서 그는 파르테논 신전, 피라미드, 부처 등 역사적, 철학적, 또는 종교적 의미가 있는 얼음 조각을 만들어 놓고 그 조각이 녹아 없어지는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그 중 마오쩌둥을 형상화 한 ‘마오쩌둥의 초상’은 25시간 동안 촬영을 했는데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마오쩌둥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 녹아 없어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의 모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하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 어떤 권력이라 해도 한시적인 것임을, 인생이 덧없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그는 마오쩌둥 얼음조각이 녹아 만들어진 물을 유리컵에 담았다. 108개의 컵이었다. 그는 이를 ‘마오의 108번뇌’라 칭했다.
얼음의 또 다른 모습, 물을 소재로 한 음악 작품이 있다. 중국의 작곡가 탄둔(Tan Dun,1957~)의 ‘물 협주곡’이다. 탄둔은 ‘물’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일 접하는 것이라며 어릴 적 물놀이 하던 기억을 음악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을 맡아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한 탄둔은 동서양의 악기와 음악을 이용해 그만의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했다. 김아타가 불교사상을 작품에 녹여낸 것처럼 불교사상을 음악에 접목시킨 그의 대표작 중 하나에는 부처의 지혜와 가르침을 주제로 한 ‘붓다 수난곡’이 있다. 7명의 독주자와 합창단,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탄둔은 불교 유적지인 모가오 석굴에 있는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수난곡’은 주로 서양음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린 곡이다. 탄둔은 이 ‘수난곡’에 부처의 이야기를 담아 불교를 서양음악 형식에 담아냈다.
불교와 동양적 색채를 음악에 담아낸 탄둔의 또 다른 소재는 물 이 외에도 종이와 지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있다. ‘종이 협주곡’에서 그는 종이를 무대에 설치하고 종이를 두드리거나 흔드는 등의 방법을 통해 종이의 소리를 음악에 접목시킨다. 그는 ‘지구 교향곡’을 작곡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혜의 말이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언제나 하나다’라는 말. 이 철학에 따라 나는 땅과 돌로 된 악기의 소리들을 하늘과 땅의 연결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인간을 대변합니다. 자연의 소리와 인간 목소리의 주고받는 대화는, 제 마음안에서, 진정한 대지의 노래입니다. ”
김아타는 예술인생을 통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겪으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해 왔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 말하며 10여년 전 ‘자연 하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름 아닌 자연에 캔버스를 설치하고, 자연이 그리도록 하는 것. 바로 자연이 그려낸 그림, 혹은 자연이 찍어낸 사진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순례’ 끝에 자연이 있었다며 자연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한다.
철학, 종교, 물, 공기, 자연, 지구, 그리고 우주.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존재하고, 사라진다.
어제의 나는 내가 아니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 순간 죽고 매 순간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공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또다시 탄생하는 것.
그 안에 예술이 있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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