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해(形骸)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6백년 민족의 벗, 남대문은 그동안 참 서럽게 세월을 견뎌왔나 보다. 국보1호란 이름에 걸맞은 대접은 커녕 겨울밤이면 노숙자들이 들어가 깡통에 불 질러놓고 라면 끓여먹으며 제멋대로 뒹굴었고 여름이면 술판 벌이다 대소변 아무데나 갈기며 잠들었던 곳. 이게 국보 1호에 대한 대접이었다.
강토가 쑥대밭 되었던 임진왜란과 포연이 자욱했던 육이오 때도 기왓장 하나 상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서울의 상징물이었으며 한국 제1의 우상처럼 여겨져 온 `맏형 문화재’ 남대문. 그는 가깝게는 3년 전 강원도 낙산사가 송두리째 불타는 꼴을 비롯 문화재 소실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다. 지켜보아 오면서 스스로도 시골마을 빈집과도 같은 천대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소신공양(燒身供養) 결심 말이다.
내 한 몸 불태워 문화유산 귀한 줄 깨닫게 만든다면 기꺼이 태우리라.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문화재 정책에 성심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이까짓 내 몸뚱어리 하나쯤이야 어떠랴. 돌에도 생명이 있다고 멋지게 말하면서 제나라 국보 불타는 동안 민간기업 돈 얻어 아내 데리고 서양으로 관광인 듯 출장인 듯 주유하다 허겁지겁 돌아오는 문화재청장이 다시 더 안나오게만 된다면 6백년 나이로 명줄 마감하는 게 뭐가 그리 아쉬우랴. 남대문이 이 시대의 문화재 홀대에 맞서 처절한 소신공양을 감행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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