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근 숭례문 화재를 생생히 기억한다. 대한민국의 소방장비가 맥을 못추는 가운데 560년 역사를 몽땅 태워버린 화재였다. 숭례문의 구조를 아는 사람들은 지붕부터 뜯어야 한다고 피를 토하듯 외쳤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지휘 한번 받지 못한채 우왕좌왕하는 동안에 전란도 견뎌낸 이 문화재는 불길 속에 사라져 갔다. 이 화재에도 굴절차는 동원됐다. 기와를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접근도 어려웠거니와 기와의 강도가 상상 이상이어서 기와 제거는 중단되고 말았다. 첨단 장비도 쓸모 없을 때가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포항에서도 굴절차가 하릴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서있다가 3층 건물 한 채를 몽땅 태워먹은 화재가 그제 일어났다. 남구 대잠동 3층 건물에서 불이 났지만 36m 높이까지 펼 수 있는 굴절차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법 주차된 차량행렬이었다. 전봇대 전선도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판단 잘못이었음이 금세 드러나고 말았다. `전시용’처럼 서있기만 하던 굴절차를 시민들의 성화에 못이겨 진입시켰을 때는 탈 것은 이미 다 타고난 뒤였기 때문이다.
이날 화재를 지켜본 포항시민들은 소방서의 대처능력에 `?’를 찍었다. 숭례문 화재 때도 물대포, 이번 3층건물 화재 때도 물대포에만 의존하다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 파이어 파이터들의 수고와 명예가 물대포 한 방에 모두 날아가버린 꼴이다. 안타깝고 안쓰럽다. 불법주차만 아니었어도 애꿎은 굴절차와 소방대원들이 손가락질 받지 않았을 것 아닌가. 아니 현장 상황 판단만 제대로 했던들…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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