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메타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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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의 메타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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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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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강의를 다니다 보니 습관이 하나 생겼다. 화장실에 들러 옷매무시와 헤어스타일을 가다듬는 일이다. 정신을 차리려고 찬물을 가볍게 얼굴에 묻히고 종이 타월로 닦는다. 어느날 별 생각없이 거울을 보는데 얼굴이 환하게 너무 잘 생겨 보였다. 헤어스타일도 피부도.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나이를 거꾸로 먹나’라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업(up) 되는 건 당연지사다.

그 날 이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볼 때면 이 거울은 나를 어떻게 비추는 지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얼굴은 하나인데 그야말로 거울은 천차만별로 내 얼굴을 비춰주었다. 닦지 않은 거울, 흐린 거울도 있고 얼굴을 병색으로 보이게 하는 거울도 있었다. 옛날 동판(銅板) 거울처럼 유독 어둡게 해 놓은 거울을 보면 얼굴의 잡티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분위기가 침울하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보는 거울은 어떤가? 나는 나를 밝고 환하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어둑어둑하고 칙칙하게 보는지.

우리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란 말을 쓴다. 메타(meta)는 영어의 접두사로 ‘넘어선다, 초월한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보이는 자연세계를 물리세계(physics)라고 한다면 여기 메타를 붙이면 형이상학(metaphysics)이 된다. 형이상학은 신(神)과 같이 물리세계를 넘어선 초경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메타인지는 나 밖에 나를 위치시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내가 마치 제 3자처럼 나를 모니터링하는 셈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가 메타인지 능력이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판단하는 능력이다. 내 생각의 합리성을 판단하고, 내 모습을 판단하고, 나아가 나의 전 인격과 삶을 3자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메타인지라는 거울을 갖고 나를 비춰보고 있는 셈이다.

그 거울은, 필자가 어느날 화장실에서 발견한 내 모습처럼 나를 밝고 아름답게 보이게 할 수 있고, 호텔 엘리베이터에 있는 거울처럼 나를 우울하게 할 수도 있다.

밝게 보이는 메타 거울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비춰 주는 거울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나는 행복하다. 내 삶은 잘 될 것이다’라는 자기 최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는 마치 칙칙한 거울의 자기 모습을 보고 멋 있다고 되뇌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매일 아침 자기에게 주문을 걸지 않아도 그냥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

그 방법은 (1) 자신의 삶을 해석하여 화해하고 (2) 삶에서 의미와 역할을 찾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두 소설이 있다.

전자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이며 후자는 생 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다.

전자의 뜻은 앞으로 남아 있는 날들이 아니라 ‘나의 과거 한 날에 남아 있는 찌꺼기’라는 뜻이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자기와 같이 일하던 한 여성이 떠나는 것을 붙잡지 못한 과거의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부둣가를 걸으며 한 노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요”. 순간 스티븐스는 인생은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 긍지와 만족을 느낄만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자신과 세상을 밝게 본다.

‘인간의 대지’는 삶에서 가지는 역할과 책임이 역설적으로 삶을 지탱하게 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 텍쥐페리는 풍족한 환경에서 의미와 역할이 없는 삶 보다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의미와 역할이 있는 삶을 긍정적으로 본다.

저자는 스페인 내전 때 공화파에 참전한 화학 교사가 전투의 두려움과 고독함 속에서도 틈을 내 농부들을 가르치느라 몰두하는 장면에서, 의미와 역할이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노년의 관점은 젊을 때의 관점과 다르며 노년에 가져야 할 메타 거울은 젊을 때와 다르다.

위의 두 소설에서 보듯이 자신의 삶과 화해하고 의미와 역할을 찾는 거울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시간의 흘러감에 대해 탄식하지 말고 시간이 빚은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 보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는 치열한 삶을 사느라 다리도 절뚝거리게 되지만 자신이 이루어 놓은 가족들을 보고 아버지 사진을 보며 “아부지, 이만하면 나 잘 살았지예”라는 말로 자신의 삶과 화해한다.

노후에는 젊을 때와는 다른 나의 메타인지 거울을 가지게 된다. 칙칙한 거울일지 밝은 거울일 지는 단순한 자기 최면의 반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삶에 대한 긍정적 해석과 앞으로의 삶에서 의미와 역할을 갖는 것이 나의 메타 거울을 밝게 만들어 준다.

선가(禪家)에서는 그 거울조차 버리고 하나가 되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니 우선 범인들이 할 수 있는 밝은 메타 거울을 만들어 보자.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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