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와 삶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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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와 삶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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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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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를 흔하게 먹었던 시절은 제주의 애월해변에 거주할 때였다. 그때는 잠수복을 빌려 입고 밤바다 문어잡이를 따라다녀 보기도 했다. 랜턴만으로 문어의 위치를 파악하고 잡아내는 것이 신기했다. 대낮에는 해안에 익숙해서 수영도 자주 했지만, 칠흑 같은 밤에는 시야가 보이지 않아 잡는 것이 어려웠다.

제주도 해안에서는 1㎏ 정도의 작은 돌문어가 잡혔다. 문어가 작을 때는 10분 정도만 삶아도 충분하게 익었다. 같은 직장에는 수시로 해안에서 잠수로 문어를 잡는 분이 있어서 귀한 손님이 오시면 갓 잡은 문어를 삶아 대접하기도 했다. 손님들은 다른 음식보다 바로 잡은 문어숙회를 좋아하셨다.

서울에도 꽤 유명한 문어숙회 음식점이 있다. 문어숙회를 생톳, 마늘, 풋고추와 함께 김에 싸서 먹는다. 얇게 저민 문어는 이렇게 먹으면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전문식당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문어는 장례식이나 제수용으로 많이 쓰인다. 특히 경상도지역에서는 문어는 장례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여긴다.

이제 나이가 들어 상주역할을 해보니 장례식에서 먹는 것은 너무나 중요했다. 고인을 위해 모인 분들과 맛있는 식사에 문어 한점은 다시 기운을 차려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모두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음식 구성으로만 보면 주로 육류 위주의 제례음식만 먹다, 담백한 문어를 새콤한 초장에 찍어 먹으면 깔끔해서 좋다.

스페인의 갈리시아(Galicia) 지역에는 신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뚜껑이 열린 관속에 들어가 죽음에 대해 명상하면서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성지 순례행사가 있다. 이 행사를 하고 나서 먹는 음식이 문어요리이다. 문어를 삶아 내고 감자와 곁들여 나무접시에 먹는데 이 음식을 갈리시아식 뽈포(Polpo)라고 한다. 이 문어 위에는 파프리카 가루를 살짝 뿌려 먹는다. 이 파프리카 파우더가 문어의 단조로운 맛을 보완한다고 한다.

장례식이 끝나면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갈리시아의 장례체험 행사도 음악과 춤이 빠지지 않는다. 갈리시아 사람들에게 잘 산다는 것은 잘 먹는 것이고, 잘 먹는 것이 삶의 중요한 일부라는 것이다. 장례식을 즐겁게 먹고 마시는 성지순례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런 마음이 바닥에 깔려 가능한 것 같다.

문어가 동서양에서 모두 사랑받고 있지만 문어의 익힘 정도에 대한 선호는 꽤 많은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 셰프들과 함께 일할 때는 문어가 완전히 부드러워 앞니로 끊어질 정도까지 익힌다. 이 정도 되면 슬슬 껍질 쪽도 벗겨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식감이 살아 있는 정도까지 익히는 것을 선호한다. 또 껍질이 온전히 살아 있고 촉촉한 수분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번 데친 문어는 식혀서 차게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프랑스나 스페인의 경우에는 데친 문어를 다시 팬에 굽는 경우도 많다. 센불에 구우면서 겉 부분에 색과 향을 더하기도 한다.

주말에 시장에 나가보니 잘 보이지 않던 국내산 활문어가 ㎏에 대략 4만원 정도에 구입이 가능하다. 이번 설에는 고기류 대신 문어로 차례상을 차리는 것은 어떨까. 남은 문어는 나중에 와인과 곁들여 타파스로 즐겨도 좋으니 활용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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