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속 `예비군복’이 지켜야 할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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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속 `예비군복’이 지켜야 할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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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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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식(문학평론가)
 
국회의원과 예비군의 같은 점 몇 가지. 앞자리에 앉지 않는다. 자리에 앉으면 자주 존다. 그리고 명분과 실제가 다르다. 즉, 예비군은 군인이기는 한데 군인같지 않고 더구나 딴 짓만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은 국민보다 자기 실속이 우선이다.
 한국 사회 현상 가운데 군복에 관한 미스터리가 있다. 멀쩡하던 완소남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딴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제복 심리학에 따르면 제복을 입으면 사람이 행동과 말에 절도가 있고 점잖아진다는데 유독 예비군들은 복장을 풀어헤치고, 아무데나 오줌까지 눈다. 표정도 불량하고 뱉는 말도 욕설을 포함해 비속어다.
 왜 그런 것일까. 익명성 이론으로 분석한다. 군복 입은 사람이 많으면 누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익명성에 기대 평소 억제된 행동과 말들을 가감 없이 한다는 것. 이른바 `일탈 심리 욕구’를 군복을 통해 충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미흡한 감이 있다. 그 일탈의 심리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군대 생활에 대한 상처를 들 수 있다. 집단적 스트레스라고 말하고 싶은 점이다. 한국 남성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이나 군대 복무 시절에 관한 꿈을 꾼다. 이는 어떻게 보면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군복무 시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제대일자만 기다린다. 하지만, 군에서 제대한다 해도 향후 몇 년간은 군복을 입어야 한다. 선택권은 없다. 강제의무사항이다. 그러나 군 복무 시절과 같이 강력한 통제를 가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군복무에 대한 상처와 트라우마에 군대에 대한 저항심리가 쉽게 결합한다.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라 볼 수 있다. 정결하고 절도 있는 태도를 요구하던 군대의 틀에 저항을 하는 것인데, 절도 있는 말보다 비속어를 남발하고 정결한 복장 대신 불량스런 폼새를 유지하려 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광범위하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혼자만 있을  때는 상태가 낫다. 여러 사람이 많이 모이면 더 심해진다. 군중의 익명성 탓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이 많으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티가 나지 않으리라는 심리적 요인 말이다. 부분적으로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군중심리 보다는 집단 심리다. 군복을 다려 정갈하게 입고, 전투화도 광내고 온 예비군이 있다면 그는 무리에 섞이지 못해서 왕따당할 것이다. 군대에서 고생하지 않은 사람, 편하게 지내서 군대생활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고지식하고, 의식없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군대에서 고생 많이 한 사람임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불량한 예비군 코드다. 이것은 자신이 진보적이라는 인식과 쉽게 결합한다. 불량 복장은 권력과 전쟁에 대한 의식 있는 소견을 가진 상징 기호다. 모범 복장은 오히려 권력과 전쟁을 용인하는 태도로 연결되기도 한다. 더구나 남북한 관계를 고려할 때 예비군 제도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어왔고, 제도적 실효성에 대해 이의가 많아온 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탈냉전과 남북 화해시대라는 흐름에 예비군복은 더욱 정체성을 잡지 못했다.
 최근 촛불 시위 현장에 예비군들이 등장해 여러 매체에서 화제가 되었다. 행동과 복장불량으로 인식되던 이들이 시위 현장을 정리하고, 경찰과 시민의 충돌을 방지하는 인간 띠를 만들기도 한다. 정작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말썽꾼들이 시위현장에서는 시민을 지키는 역할을 정결하고 절도 있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의경을 심하게 대하는 시민들을 말리기도 한다.
 요컨대, 예비군의 말썽 심리에는 바로 제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촛불 시위에는 예비군복이 자부심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능동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시각에 따라 여전히 불량한 일탈 태도로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예비군복은 제복으로서 어떤 역할과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궁극적으로는 시민과 국민을 지키는데 모아질 수밖에 없다. 경찰복도 그러한 자부심의 상징이어야 한다. 군림과 억압, 수치의 상징이어서는 곤란하다. 여하튼 이번 기회에 예비군 제도 운영과 정체성 모색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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