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허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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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허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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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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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노무현 묻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
 
 김인만 (작가)

 
 죽음이라는 물리적 소멸은 살아 있는 자들을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한다. 죽음은, 죽음이라는 불행 앞에 살아 있는 자들을 모두 집합시켜 불행에 동참케 하는 강력한 위엄을 지닌다. 그러기에 죽음 앞에 고개 숙여 예의를 갖추면서, 살아 있음 자체가 미안하고, 숨쉬기가 뻔뻔스럽게만 느껴지고, 무언가 떳떳하지 못했던 허물에 대한 책임과 반성이 따른다. 더구나 정부수립 이후 이 나라 국민이 경험해 보지 못한 전직 대통령의 자살임에랴.
 인간이 저마다 독특하고 유별난 생물학적 유기체이긴 하지만, 먹고 잠자고 춘하추동 부대끼며 손바닥만한 땅덩어리에서 살아가는 이 나라, 동시대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필요선(必要善)인 화합을 하지 못하고 왜 그리 적대적으로 갈라져서 으르렁거렸는지. 미움과 사랑이 극에 달했던 노무현 시대를 접고 나서도 그의 자살이라는 비극 앞에 혼란스러워짐은 살아 있음의 미안함이 있지만, 그렇다고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위선을 가장할 수도 없는 자존심 때문이리라.
 노무현의 비극은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중 비리에 연루되어 본인과 측근, 친인척들이 줄줄이 사법처리 당한 불행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노무현 시대도 그 한 부분이다. 노무현이 본인과 가족의 허물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죽음이라는 수단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누구보다 1급수처럼 깨끗함을 내세웠던 도덕적 파산을 견디지 못한 선택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의 유서가 가족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전하는 내용에 국한돼 국민에게 전하는 말을 남기지 못한 것도 그가 겪은 고통으로 평상의 사고와 분별이 망가지고 의식구조가 극한 상황에 구속되어 있었음을 헤아리게 한다. 하지만 구질구질한 목숨을 비관하면서도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한둘이던가. 노무현의 고통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가경영으로 국민화합을 이끌어가기가 버거웠던 깜냥과의 함수관계로 겪어야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왜 우리 대통령들은 그 모양일까”, “지지리도 대통령 복이 없는 국민”이라는 탄식이 아니 나올 수 없지만, 대통령에게 원망과 비난을 퍼부을 일만도 아니다.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이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씌울 일은 아니다. 대통령과 혈연이나 권력의 실오라기라도 연결된 사람이라면, 사돈의 팔촌까지 수백, 수천의 친인척과, 청와대 권력의 가물가물한 끝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몰려드는 것이 누구인가.
 오죽하면 박정희 시대 청와대에 친인척 관리 담당 비서관을 두고, 대통령의 구미 생가에 경찰관을 상주시켰을까. 대통령의 친인척 담당 비서관은 박정희 때가 유일했다. 생가에 경찰관을 파견한 것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당시 구미 생가에 파견된 선산경찰서 순경은 대통령이 소년 시절 공부했던 토방에서 아예 기거했다. 대통령 가족을 경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외부인 출입을 감시하는 일이 주임무였다. 이권운동 같은 것에 말려들지 않도록 지키고, 그 일대 친인척의 동태를 살펴서 청와대 비서관에게 보고했다.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세 대통령을 빼고 전두환 이후 노무현까지 본인 또는 주변 인물의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대통령이 없다. 대통령의 허물은 그 대통령을 뽑은 국민도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 국민 수준에 걸 맞는 대통령이 나오게 돼 있다. 정변이 일어나는 것도, 부패비리로 욕을 당하는 것도 그 나라, 그 국민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금, 전직 대통령의 별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인간적인 고통을 헤아리고, 생전의 면모를 기억하며 슬퍼하고 있다. 죽음은 살아생전 몸을 덮었던 허물을 벗고 떠나는 것이다. 손에 쥐었던 것을 놓고 가는 것이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모든 선악을 떨구고 가는 홀가분한 여행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존엄성이 부여되어야 할 가장 평등한 여행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가 남기는 허물을 여행길에 함께 딸려 보내지 않는다. 원초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으로 모시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예의다. 남겨진 허물은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역사 속으로 간 노무현이 남긴 것은 미화하거나 폄훼할 필요가 없는 냉철한 평가의 대상이고 교훈이다. 그는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부분이다.      (dail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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