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傳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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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전령(傳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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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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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옥근/의학박사
 
 어느 선배가 오랜만에 만나 정담을 나눈 자리에서 `세월은 속일 수가 없는가봐’라고 가볍게 내뱉은 말이 문득 문득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다.
 오늘 아침 생기발랄한 예쁜 아가씨가 폭 넓은 `후리아원피스’로, 마치 하얀 찻잔에 막 전사(轉寫)해 놓은 것처럼 원색으로 판 박은 코스모스가 화려하게 나부끼는 옷을 입고 가는 모습이 요요(夭夭)하기만 하다. 역시 계절은 여성의 옷자락부터 오는 모양이다. 우리 일행들이 매일 같이 워킹하는 형산강변 산책로 4km는 바쁘게 걸어도 왕복으로 1시간 남짓 걸린다. 다른 산길도 있고, 송도에 솔밭 그늘 길도 있지만 이 길을 한사코 고집하는 까닭은 우선 이곳엔 활기가 넘쳐난다.
 형산강 건너 나래를 편 포스코 공장엔 굴뚝마다 경쟁이나 하듯 하얀 수증기가 뿜어 나오고, 유난히 크고 윤곽이 뚜렷해 마치 일월 달 달력에서나 보암직한 그림 같은 둥글고 붉디붉은 태양이 이른 아침 공장 굴뚝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섰노라면 정월 초하루 구름사이를 제치고 나타나기만 기다렸던 희망덩어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으로 우리들 모두는 가슴마다 뜨거워지는 것처럼 활기에 찬다. 이곳 산책로 양쪽 고수부지에는 제 철을 만난 코스모스가 만개해 고운 자태를 한 껏 뽐내고 있다.  형산강 흐르는 물을 거슬러 고기잡이 어선도 요란하게 물살을 가르며 올라간다. 코스모스는 가을의 대명사처럼 쓰고 있지만 원래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리  멕시코가 원산지로 더위가 시작되는 6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월까지 이어지는 관상용 꽃이였다. 그런데 우리는 코스모스하면 너나없이 가을을 먼저 떠올리지만 아마도 봄, 여름에는 우리나라 같이 좋은 토양과 기후 때문에 피고 지는 꽃들이 많았을 것이고, 가을은 코스모스보다 더 예쁜 꽃이 비교적 적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특히 동양 3개국 중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이기에 높고 맑은 푸른 하늘에 코스모스가 돋보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리고 동정심이 많아 측은지심이 어떤 나라보다 높았던 우리 민족에게 가냘픈 코스모스에 대한 사랑도 더 했을 것 같다. 코스모스는 자주색, 흰색 중간 분홍색이 전형적이다.
 요사이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변종으로 노란색 코스모스까지 나와 도심 어디에서도 쉽게 구경 할 수가 있다. 하기야 변종이 판을 치는 세상 아닌가.
 별종이 더 유명한 세상 아닌가. 잎은 잘게 갈라져 마치 해초마냥 선형(線形)이어서 실고추를 늘어놓고 삼단머리를 곱게 빗질 해놓은 키다리 아가씨 같다.
 꽃잎은 부드럽고 고와 이슬 머금은 코스모스는 유난히 교교(皎皎)하기만하다. 아주 부드러운 인디안지(紙)마냥 강물에 스쳐지나가는 바람결에도 가볍게 춤을 추며 나부낀다. 가을비가 2~3차례 내리더니 한층 고와 교기(嬌氣)마저 느껴진다. 코스모스는 다른 꽃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태가 있다. 곁가지가 많이 돋고 같은 가지에서 나와도 꽃이 필 무렵이면 형,동생처럼 키가 확연히 나누어져 피기 때문에 꽃들이 겹치는 경향이 없고 꽃마다 제 얼굴을 내 보이며 나르시스(narcissus)처럼 자기도취에 빠진다. 꽃이 피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손 큰 사람 한 뼘은 더 길게 목을 늘어 빼며 올라오는 바람에 마치 꽃 무더기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보인다.
 빨간 꽃잎들이 나부낄 때마다 불씨가 되어 꺼진 불꽃이 다시 타들어 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드높아지는 가을 하늘, 맑고 고운 바람 속에서 청초하게 피어나는 코스모스들….
 `귀천’을 썼던 천상병은 `만추’에서 /내년 이 꽃을 이을 씨앗은/ 바람 속에 덧없이 뛰어들어 가지고/ 핏발 선 눈길로 행방을 찾는다/ 숲에서 숲으로 산에서 산으로/ 무전여행을 하다가/ 모래사장에서 목말라 혼이 난다/ 어린 양 한 마리 돌아오다/ 땅을 말없이 다정하게 맞으며/ 안락의 집으로 안내한다/ 마리아/ 나에게도 이 꽃의 일생을 주십시오/
 가을은 코스모스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 영혼을 맑게 하고 시원케 하는 계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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