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창을 열어두고 방에 앉아 있을 때면 종종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 그건 다른 도시의 빗소리와는 완전히 달랐지. 젖은 길을 내달리는 차소리도, 차박차박한 발소리도, 우산을 함께 쓴 이에게 말을 거는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도 없었어. 빗방울이 빽빽이 늘어선 건물들, 그것들에 붙은 유리창들, 누가 버리고 간 자전거의 프레임이나 아스팔트길 위로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만이 선명했지.”(88쪽)
원활한 신인작가 발굴을 위해 출판사 `문학동네’가 2011년 제정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대학소설상에는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정지향씨의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가 선정됐다.
“요조와 나는 사막에 단둘이 남겨진 적군 같았어. 무기도 없이 말이야.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 알 수 없었지. 더운 공기 속에서 요조의 무기력이 전염병처럼 옮았어.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도 언제까지나 같은 풍경이 계속될 것 같았지.”(20쪽)
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쇠퇴해가는 지방예술대학이 서울로 이전을 결정한 뒤, 고아의 도시로 전락한 대학 주변 자취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취촌을 떠나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학생들은 그곳에 남는다.
주인공 `나’는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이자 남자친구인 `요조’와 동거 중이다. 나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상처가 크다. 요조는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한 고민으로 힘겹다. 나와 요조는 서로가 채워주는 위안과 안락 속에서 위태로운 청춘의 나날을 견디고 있다.
“민영은 자신이 `카우치 서퍼’라고 했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민영이, 그건 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 대신 각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파에서 잠을 자며 여행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라는 걸 알려줬어. `카우치 서핑’이라는 사이트에서 여행자들에게 거실을 내주려는 사람들과, 소파를 찾는 여행자들이 교류한다고 했지.다(50쪽)
지리한 일상 속, 몇 해 전 갔던 인도 여행 중 알게 된 한국 입양아 `민영’이 나를 찾아오면서 나와 요조 그리고 민영의 동거가 시작된다.
이들의 삶은 어딘가에 정착을 해야 할 시기에 사회로 진입하지 못하고 계속 표류하는 청년들의 삶을 대변한다.
꿈과 열정보다 스펙으로 평가 받는 청년들의 삶은 팍팍하다. 사회는 그들에게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그저 사회가 정해 놓은 틀에 맞는 사람을 요구할 뿐이다.
단단한 사회의 진입장벽 앞에서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고, 요조는 PD 시험을 준비한다. 민영 또한 잠시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는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 왜 또 배가 고프지. 요조와 민영을 데리고 집에 가고 싶다. 민영에게 다른 요리를 해달라고 하고, 그걸 좀 배우고, 또 먹은 다음 잠을 자고 싶다. 사람들이 추석 때 그러듯이. 계속 해 먹고, 아무거나 영화를 받아 보고, 또 잠을 자고 싶다.”(99쪽)
나와 요조, 민영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희망을 찾는다. 정 작가는 위태롭게 이어지는 이들의 삶을 감성적인 문장으로 끌어안는다. 세 인물들은 세상의 모진 풍파에 부딪히고 깨지며 성장한다. 함께 있을 때 발하는 연대의 힘은 강력하지만, 결국 혼자가 됐을 땐, 다시금 외로워진다.
“눌러뒀던 생각들이 봇물처럼 터졌지. 민영과 요조가 모두 떠나고 나면 나는 방안에서 뭘 해야 할까. 학기가 시작되고 도시로 나갔던 아이들이 모두 돌아오면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모양으로 걸을까.”(113쪽)
세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로 나아간다. `요조’는 PD 최종시험장에서 사라지고 `민영’은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에 취업해 방을 얻어 독립한다. 한 문장도 쓰지 못했던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정 작가는 가족 해체, 사랑과 우정, 사회로의 진입 실패와 정체성 혼란 등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정교한 플롯과 잔잔한 감성에 녹였다. 정 작가는 예리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시선으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 시대 청춘들을 다독인다.
똑똑똑, 누군가 어두운 내 방문을 두드리며 `소파를 내어줄 수 있어?’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 표류하고 있는 청춘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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