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 시인 3번째 시집… ‘굴 소년의 노래’ 등 55편 엮어
채식주의자의 식탁
이기성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113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세 명의 여자들이 빠르게 걸어간다. 두 팔을 높이 흔들면서 두꺼운 다리와 배와 허리에서 출렁거리는 검은 살들이 시야를 가린다. 세 명의 여자들이 골목을 지나 거리를 지나 포장마차를 지나 춤추듯 코너를 돌아간다. 여자들은 검은 순대와 딱딱한 간을 씹으며 걷는다. 커다란 맨발로 뜨거운 식욕과 반성과 비린내를 밟고 걷는다.”(오늘)
시인 이기성이 최근 3번째 시집 ‘채식주의자의 식탁’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올해 현대문학상 수상작 ‘굴 소년의 노래’를 포함해 55편의 시가 담겼다.
이 시인은 삶의 황폐한 풍경을 사진을 찍어내듯 세밀하게 묘사, 파편적이고 익명화된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의 풍경을 바라본다.
이 시인은 삶에 대한 사회적 예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과도한 격정에 빠지지 않는다. 그 시선 안에서 결핍의 영토를 떠도는 우울과 슬픔, 비애와 무기력 등의 감정이 구조화된다.
“그렇지, 이것은 감자다, 식탁 위에 어둑하게 놓인 이것. 당신이 오늘의 심장에 손을 푹 찔러 넣어 파낸 감자, 뜨거운 감자 말이다. 오늘은 감자를 먹는 날, 많은 서류가 바람에 날리고 프레스 기계에 잘린 것은 손가락뿐이 아니다.”(감자)
이번 시집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먹는 장면이 많이 그려져 눈길을 끈다.
해설을 쓴 최현식 평론가는 이기성 시에 등장하는 먹는 모습이 “굶주림을 면하고 생존을 유지하는 장치로서 ‘먹다’의 절대성, 지폐 한두 장 값으로 그것을 제공하는 길거리의 약자, 꾸겨진 푼돈에 목숨을 거는 이들의 생명의지”를 투영한다고 썼다.
시인은 생의 의미 속 먹는 것의 의미를 예리한 문장으로 써내려감으로써 생의 진정한 의미와 그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듬는다. 그가 그린 시 속 화자들이 우리와 닮은듯해 마음이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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