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앞에 ‘헛’을 달고 다니는 낱말치고 좋은 뜻을 지닌 것은 없다. 아무런 보람도 없이 ‘헛고생’을 하고 ‘헛걸음’하면 ‘헛심’만 빠진다. 축구선수의 ‘헛발질’과 야구선수의 ‘헛방망이’와 사냥꾼의 ‘헛불’은 결국 ‘헛다리’짚는 짓이다. ‘헛배’가 부른 사람은 ‘헛방귀’를 뀌게 마련이다. 교교(皎皎)한 달빛 아래 ‘헛맹세’를 일삼는 바람둥이는 ‘헛물’ 켜기 십상이다.
말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다. ‘헛된말’에 익숙해지다보면 매사에 ‘헛손질’만 하다가 끝나고 만다. ‘헛공론’을 일삼다가 ‘헛소리’나 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헛헛증’까지 생길 듯 싶기까지 하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네들이 밤참 먹는 낌새를 맡기만 하면, 나도 덩달아 속이 헛헛하고 굴품해서 얼마나 많은 군침을 삼켰는지 모른다. ”
정치인에게 선수(選數)는 관록과 중량감의 잣대나 다름없기는 하다. 같은 의원신분이지만 모임에서도 다선의원은 상석으로 모시는 게 정치판의 예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의장선거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니 가랑이 사이로 공이 빠져나간 축구선수만큼이나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법에 없는 다선 우대 예의가 영주 시정을 석달이나 헛돌게 하고 있다. 이 불화반목 대치상태는 언제 마침표를 찍을지 알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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