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피해가 ‘재앙’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20일 0시 현재 살처분됐거나 처분 예정인 가금류는 1991만9000마리로 우리나라에서 사육하는 전체 가금류의 12%에 해당한다. 이는 669일 동안 1937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던 2014~2015년 AI 사태 당시의 피해를 넘어서는 규모다.
당시 도살처분 보상금과 생계소득안정 지원금 등 직접 손실만 해도 2400억여원에 이르렀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사육 가금류의 10%가 살처분될 경우 직간접 손실은 모두 4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도 거의 매일 의심 신고가 들어오고 있는 데다 야생철새가 계속 국내 철새 도래지로 유입되고 있고 안전지대로 불렸던 동물복지 축산농장이나 유기축산물 인증농장에도 AI가 덮치고 있어 당분간 피해는 계속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동안 주류를 이뤘던 H5N6형 바이러스 이외에 유전자 형태가 다르고 잠복기가 더 긴 H5N8형까지 발견돼 방역의 어려움은 한층 가중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이번 AI 사태로 인한 피해액은 최대 1조477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AI 확산 차단을 위해 알을 낳는 닭은 물론 계란까지 매몰 처분하다 보니 전국의 마트와 슈퍼에서 ‘계란 대란’이 빚어지고 연말 성수기를 맞은 빵집과 제과업체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와 식품업체들은 사상 처음으로 생계란을 수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AI 위기경보는 바이러스가 사실상 전 지역에 확산한 이후인 16일에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됐다. 살아 있는 닭의 시장 유통을 금지했다가 다시 허용하고서는 위기경보가 격상되자 재차 금지하는 등 대책이 오락가락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심한 당국의 대응은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즉각 최고단계의 위기경보를 발령하고 총리가 직접 방역 상황을 챙긴 일본의 경우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 덕분에 일본에서 AI로 인해 살처분된 가금류는 100만마리 미만에 그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국이 불안하다고 해서 정부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는 곤란하다. 국가적 재난으로 번지고 있는 AI 사태에 총력 대응하기 위해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직접 챙겨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를 확실히 세우고 관련 부처와 지방 행정조직의 유기적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것 이외에 AI 백신 개발이나 겨울철 휴업보상제와 같은 근본적인 개선책도 본격 검토해야 한다.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수백만, 수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도살해 파묻는 일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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