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야 어찌됐건 고래사냥이 생업인 `꾼’들은 경험을 통해 고래를 철저히 알아갔다. 상대해선 안될 고래종류도, 고래의 가족관계까지도 줄줄이 꿸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 때문에 고래 일가족을 몽땅 잡으려면 새끼-어미-아비고래 순서로 작살을 던졌다. 그런가 하면 영국인들이 `살인고래’라고 부른 범고래는 작살맞은 동료를 위해 떼를 지어 앙갚음에 나서는 단결력이 있어 기피대상 1호로 꼽혔다. 오늘날의 `고래학’은 이런 저런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고래사냥의 빌미는 고래 스스로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자살을 감행해 해안에 떠밀려온 고래는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도 쓸모가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뼈는 썰매, 배, 움막을 짓는 원자재로 훌륭했다. 게다가 가죽과 수염은 올가미 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기름은 난방과 조명에 `딱’이었다.
대양(大洋)의 고래사냥은 9세기초 바스크 사람들이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고래사냥 `원조’들의 활약이 프랑스, 스페인 해안에 고래상점을 등장시켰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고래에서 나온 산물이 거래상품이었다. 고래 혓바닥은 도시인들의 인기식품이었다고 전해진다.
불법 포획한 밍크고래 고기 300여상자를 포항시 흥해읍 흥한리 냉동창고에 보관해오던 업자가 덜미를 잡혔다.어찌 이뿐이랴. 고래고기 음식접에 공급되는 물량이 모두 혼획 또는 좌초된 것들이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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