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윤 환 (언론인)
4·9 국회의원 총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후보가 60명 가까이 당선됐다. 친박 한나라당 당선자와 친박연대, 그리고 친박 무소속 당선자를 합쳐서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80여석에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개별 정파로 독립해도 원내교섭단체(20석)를 3개 구성할만한 규모다. 한나라당이 이들의 `복당’을 반기지 않자 “살살 빌면서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배짱을 내밀만 하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친박’ 당선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넘겼다지만 겨우 2석이 넘을 뿐이다. 국회상임위에서 국회의장단과 위원장을 뺀 안정의석은 168석을 말한다. 그래야 상임위가 잘 굴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내 친박 의원들이 `몽니’를 부리면 당보다 더 골치가 아플지 모른다.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이 있다지만 협력을 얻으려면 권력을 나눠야 한다.
그래서 박 전 대표와 친박 당선자들의 주가가 하늘을 찌른다. 이 대통령 측근인 이재오-이방호 의원이 낙선함으로써 친박을 상대할 중진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이 대통령 친형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하겠지만 표면에 나서기도 그렇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를 “해당 분자”라고 입바른 소리를 했지만 당내에서 반향이 전무하다. 전직 당대표로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한 무소속후보를 지원한 박 전 대표는 당헌상 분명히 `해당 분자’인데도 말이다. 공천 탈락한 고진화 의원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반대’에 가세했다고 제명처분한 것과 비교해도 형평이 맞지 않는다. 심지어 친박 당선자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습니다”고 소리쳐도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이 친박 당선자들의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그건 공천실패다. 한나라당 아성인 영남에서 무려 30곳에서 후보가 낙선하고도 과반을 얻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대부분 친박 후보들이 한나라당 후보들을 눌렀다. 공천에서 최우선 기준이 `당선 가능성’이라면 한나라당 공천은 대실패작이라는 반증이다. 공천을 주도한 이방호 사무총장이 민노당 강기갑 후보에게 패배했을 정도니 두말할 것도 없지만, 강재섭 대표가 진작 `불출마’를 선언했기 망정이지 만약 친박 홍사덕 후보와 대구 서구에서 맞붙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궁금하다. “박근혜 죽이기에 강재섭이 앞장섰다”는 친박의 공세가 먹혀 당대표가 낙선하는 수치스런 사태가 안일어났다고 장담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한나라당 공천에 불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젠 선거가 끝난 마당이다. 아직도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한풀이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토록 미워하던 이재오-이방호도 낙선했다. 이 대통령 측근 박형준-정종복도 사라졌다. 이만하면 한풀이가 충분히 됐음직 하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이제 취임 두 달도 안됐다. 막 시작한 셈이다. 벌써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권력 싸움을 시작하겠다는 것인가.
다음 대선은 멀리 있다. 지금 대권 꿈을 꾼다고 이뤄진다고 보장할 수 없다. 너무 많은 변수가 놓여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불과 한달여전 10년 좌파정권을 청산하고 집권했을 뿐이다. 4·9 총선은 입법권력을 포함한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보수가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2년 후 지방선거가 있고, 4년 후 총선이 있다. 대선은 그 다음이다.
가뜩이나 안팎의 여건이 좋지 않다. 새 정부가 위임받은 `경제 살리기’에 실패할 경우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따라서 친박 당선자들은 무엇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살펴야 한다. `한나라당 대표=박근혜’ “19대 대통령 박근혜” 같은 권력투쟁에 몰두할 때가 아니라는 충고다. 친박의 한나라당 복당도 유권자들의 뜻을 존중하는 선에서 정리해야 할 것이다.
민심은 `복당’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 하다. 복당하더라도 마치 점령군과 같은 자세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폄훼나 도전은 금기다. 이 대통령이 “내 라이벌은 국내에 없다. 외국 대통령들이 라이벌”이라고 한 의미를 되새기기 바란다.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이 `턱걸이’이긴 하지만 친박 세력이 도전할 그런 상대는 애초부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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