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들이 잘 때도 뛰어야 하는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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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들이 잘 때도 뛰어야 하는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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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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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식/문학평론가
 
 4월 장애인의 달에는 아무래도 장애인들의 모습이 대중매체에 더 빈번하게 보인다. 그 장애인들은 장애에 따라 특징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열심히 산다는 점이다. 열심히 살지 않는 장애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비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정상인 못지 않게 열심히 사는 장애인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장애인들의 열심히 사는 모습은 좋지만, 장애인들은 대체로 속도와 경쟁의 틀에 갇혀 있다. 정상인들이 이들을 속도와 경쟁 속에 가둬두는 것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둠이 어디 방송 미디어만일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한다. 장애인들에게 경쟁의 레이스는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비장애인들은 열심히 사는 장애인들에 열광한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는 온갖 역경을 의미한다. 온갖 역경을 딛고, 마침내 성공을 거두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인 장애인들을 선호한다. 보통 사람도 하지 못한 일을 장애인이 두 배, 세 배 노력 끝에 성공할수록 미디어는 더욱 주목한다. 보통사람들조차 그들이 초인이기를 바란다. 이로써 장애인은 끊임없는 경쟁의 레이스에 갇힌다. 장애인은 장애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경쟁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과 싸움을 극복하고 이겨야 한다. 슈퍼 울트라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통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항상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모범적인 모델이 되지 못한다.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장애인을 모범적인 모델로 상정하는 가운데 정작 장애인은 인간의 삶에서 정작 소외된다.
 자신에게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쓸모 없는 존재가 된다. 비장애인이 쉴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장애인은 뛰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장애인이 아니다. 이게 정상인들이 그리는 장애인들의 모습이다.
 현대인이 속도의 병에 걸려 있다는 비판은 많지만, 장애인에게는 더욱 속도를 내라고 한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들이 빨리 보고 듣고 익히고 사고하고 행동해서 일정한 목표를 효율적으로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적으로 고요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는 느림의 철학 속에 장애인이 있으면 불경한 일이 된다. 게으름뱅이고, 무기력한 장애인으로 취급된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장애인에게 오히려 더욱 심하게 존재한다.
 이는 장애인 노동자에게는 더욱 강하게 부과된다. 속도 경쟁에서 장애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세 배 워커홀릭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그럴듯함의 성취다. 삶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엇인가 보여줄 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가 된다. 많은 매체는 이러한 면을 극찬하고 비장애인들에게 채찍질로 사용한다. 장애인도 저렇게 사는데 사지 멀쩡한 당신은 뭐냐고. 게으른 정상인들을 질책하기 껄끄럽다고 장애인들을 모델로 동원하는 `저의’는 장애인들의 평화를 깬다.
 성공과 발전은 각자의 개성과 페이스에 달려 있다. 특히 장애인들은 각자 가진 핸디캡 때문에 각자의 행동방식과 삶의 요령에 익숙하다. 그런데 정상인들처럼 성취하는 장애인들만 조명된다. 그 조명 속 성공의 대열에 끼지 못한 장애인들은 어떤 기분일까?
 느리고 여유 자적한 장애인의 모습은 언제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게으름뱅이 장애인이 우대 받는 사회, 미디어 속에서라도 느림의 철학이 장애인에게 수혜의 빛을 줄 때도 되었다. 느림의 철학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느림의 생활을 하기에 장애인들의 물질적 조건은 아직 열악하기 때문일까. 분명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장애인을 경쟁과 속도의 경쟁에 내보내는 미디어의 태도부터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 존재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을 체험하는 생사가 많은 것은 그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젠 육체 아닌 정신적으로도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안는 태도를 가져야할 때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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