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가진 것 다 버렸는데버릴 것 자꾸 생기네 채울 것 다 비웠는데비울 것 자꾸 고이네 버리고 비우는 일이요순보다 어렵던가.
김시종 노인이 지팡이를다듬고 있다. 굽은 나무라고 나무라며지팡이를 사포로 문지른다. 내가 보기엔노인과 지팡이가닮은 꼴인데 노인은 지팡이가 굽었다고지팡이만 호대게나무라신다.
정갑숙 작은풀꽃들당당하게 주먹을 쥐고 있다 몸집은 작지만향기는 부끄럽지 않다고. 비록 한 계절을 살지만벌 나비 바람에게 줄향기는 넉넉하다고
박화목 초승달이 개울에서미역을 감고 버드나무 가지에 걸터앉아잠시 쉬어가려나봐. 개굴개굴... 개구리가하 놀려대니까 그만 얼굴 빨개져서둑아래 숨어 버렸네
박화목 모래톱에혼자 앉아옛일이 그리워 흰 물새 끼룩끼룩더욱 괴로워 고깃배는 사공 없이저녁놀만 타는데 저문 봄 날 점도록뉘를 기다리나뉘를 기다리나.
이진호 포플러가 강물에 뛰어들어붕어처럼 꼬리친다. 매미 소리가물속에서 들려온다. 붕어의 울음으로맴 맴 매암맴 맴 매암
유경환 버찌가 다닥다닥 등을 달았다. 마을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에 새들이 마음놓고 벌이는 숲잔치 버찌가 고운등을 많이 달았다.
김시종 딱다구리는 목탁을 두드려도성자(聖者)가 못된다금실좋은 원앙도남의 둥지에 알을 품는다절마당에선안경 쓴 두꺼비가송충이를 시식(試食)한다
김상훈 별받이 미닫이 아래분매 한그루 앉혀 놓으니 온누리 봄 氣運이우리집에 먼저온다. 먼 하늘 回靑의 자락도추녀 끝에 와 걸린다.
김상웅 외줄 오르면서 춤을 춘다 한 손에 부채 들고줄을 튕겨하늘로 솟구치는 광대같이 백동전 같은 햇살이 짤랑거리는 생의 굿판에새벽같이 피어나는나팔꽃 갈채를 의식하지 않는다
고증식 너를 건널 수 없어라 네 가슴에 비수로 꽂은 말 몇 마디 긴긴 새벽편지로 달려밤새 울음이고 싶은데 안개 속 서성이며 너는 너대로나는 나대로
최영자 씨앗 하나 바람타고내게로 와 묻힙니다. 이 세상에 피기위해몸부림치던 밤이 지나고 줄기타고 오르는하얀 접시꽃으로 피어 날마다 당신을 올려다봅니다내 순정이 식어버릴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