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SSM을 규제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지만 여야가 싸우는 바람에 관련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재벌의 구멍가게 상권 강탈을 방치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가 주창한 `공정한 사회’가 서민들의 뒷골목에서는 목소리를 잃고 있다. 그 배경에는 부도덕한 재벌이 있다.
특히 롯데그룹.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지난달 11일 기업형 슈퍼(SSM) `롯데 마이슈퍼’가 등장했다. 이 슈퍼가 문을 열기 전 열흘 동안 공사가 진행된 가게 앞에는 `피자가게 준비 중’이라는 작은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주변 상인들 모두 당연히 피자가게가 입점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짜잔”하고 등장한 것은 `롯데 마이슈퍼’다. 사업이 아니라 `위계에 의한 사기행위’에 가깝다. 바로 옆 건물 지하 1층에는 오래전부터 럭키마트가 영업해오고 있다. 롯데 측은 “하청업체가 공사를 맡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은 잘 모르겠다”고 변명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지난달 21일 롯데슈퍼가 서울 용산구 문배동 원효로에서 기습개점했다. 원효로점은 공사기간 동안 공사 가림막에 `스시뷔페 입점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대학로에서는 피자집이라고 속이더니 이번엔 초밥집이다. 재벌이 아니라 `야바위꾼’이다. 꼼수 입점에 대해 롯데 측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배 째라”다.
`하이에나’식 상권침투는 롯데만이 아니다. 꼼수의 수준 차이만 있을 뿐 신세계의 이 마트나 홈플러스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롯데와 이마트의 경쟁은 사활적이다. 유통업계 선두자리를 놓고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죽어나는 건 구멍가게다. 정부만 바라보지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사람은 `생수도 기업형 슈퍼가 더 싸다’며 SSM을 두둔하고 있다. 더 한심한 건 민주당이다. SSM 규제법 도입이 시급한데도 법안처리를 미뤘다.
정부가 SSM 규제에 소극적인 이유는 `WTO(세계무역기구) 서비스 협정’ 위반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한-EU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앞두고 삼성 테스코(홈플러스)같이 국내에 진출한 유럽 유통업체들과 통상 마찰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영국·일본 같은 WTO 회원국들은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중소상인들을 적극 보호하고 있다. 독일은 도시건설법에 따라 연면적 1200㎡, 매장면적 800㎡ 이상 시설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기존 소규모 상가들의 매출이 10% 이상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 입점 자체가 불가능한 `10% 가이드라인’ 제도를 적용한다. 영국은 도시계획 법령을 통해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이 들어서는 것을 사전에 규제하고 있고, 이탈리아도 인구 1만명 이하 시는 1500㎡, 1만 명 이상은 2500㎡ 이하로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외국 눈치를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들에게는 SSM이 도움이 된다. 대량유통의 이점을 누리며 박리다매로 싼값에 생필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구멍가게나 소형슈퍼에 비해 싼 탓에 알뜰 소비자들이 몰린다. 자유시장주의에 부합된다.
소형 유통업체도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라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일본은 소상공인들이 오래전부터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품유통에 공동대응해왔다. 대형 유통업체가 시도할 수 없는 상품의 소량화를 통해 소비자를 끌어 들였고, 상품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해왔다. 일본에서는 그 결과 대형 백화점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 교훈이다.
물론 소상공인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롯데 같은 하이에나가 존재하는 한 살아갈 길은 막막하다. `공정한 사회’를 입으로만 떠벌일 일이 아니다. 비자금, 차명계좌, 불법상속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재벌들을 `공정’의 잣대에 붙들어 놓지 않는 한 구멍가게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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