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규모 정전 사태는 최 장관 한 사람 경질로 끝날 일이 아니다. 야당은 정전 사태의 배경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전 사장에 대학과 현대건설 후배를 앉히기 위해 한전사장을 무리하게 경질하는 바람에 경영진에 공백이 생겨 정전사태가 야기됐다는 것이다.
정부가 임기가 채 끝나지 않은 김쌍수 한전 사장 교체를 추진하자 김 사장은 임기 중 사표를 제출했다. 사실상 몇 개월 동안 한전 사장이 공석이었던 셈이다. 9월 15일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이 와중에서 벌어졌다. 한전이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김중겸 한국전력 신임사장 후보의 선임 안건을 처리한 것은 정전사태가 끝난 지난 16일이다.
한전 사장이 사실상 공백이었던 과정에서 한국발전산업노조는 지난 7~ 8월 5차례에 걸쳐 전력대란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경부는 물론 한전은 이들의 경고를 무시했다. 기상청이 9월 1일 기온 상승을 발표함으로써 전력수요 증가가 예측됐는데도 전력예비율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전노조는 정전사태를 `예고된 인재’라고 규정했다.
문제는 후임 한전사장 역시 전력에 문외한 이라는 점이다. 신임 김중겸 사장은 고려대에 현대건설 출신으로 이 대통령의 직계다. 현대건설 사장을 지냈다. 그는 건축공학이 전공이다. `전력’과는 인연이 없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낙하산’이다. 한전 50년 역사에 `건축공학’ 전문가가 사장에 임명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만료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전을 필두로 공공기관 인사에 `낙하산’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말기의 엽기적 인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규모 정전사태와 함께 분노해야할 대상은 바로 “형편없는 후진국 수준”으로 전락한 청와대의 공공기관 인사시스템이 아닐까?
부동산 투기 등 온갖 하자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한 최중경 지경부 장관의 정전사태 대응 미숙이 국민들의 분노를 더 촉발시킨 것만 봐도 이 대통령의 인사는 문제가 적지 않다. 전방의 레이다망이 마비되고, 병원과 산업시설 기간장비가 멈춰섰는데도 한가하게 청와대 만찬장에 앉아있는 지경부 장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이 `낙하산 인사’ 관행을 이제라도 바로 잡지 않으면 `정전사태’와 같은 `예고된 인재’가 어디서 언제 다시 터질지도 모른다. `낙하산인사’는 그 기관조직을 이완시켜 직원들의 도덕적 무장을 해체하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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