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인간 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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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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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장편소설 `나프탈렌’출간

 라시데스 아저씨가 대작가 가브리엘 마르께스에게 묻는다.
 “가브리엘, 당신이 누구라는 사실을 왜 내게 한 번도 얘기해주지 않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마르께스는 가슴 아파하면서 대답한다. “라시데스 아저씨. 지금까지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아저씨에게 말할 수 없었던 거예요.”
 마르께스 자서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마르께스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게 위안이 되는 건 아주 잠깐이고 막막함은 오래간다.
 백가흠의 장편소설 `나프탈렌’ 속 인물들도 하나같이 자신이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백용현 교수는 한 줌의 권력으로 여대생들을 희롱하며 부질없는 존재감 확인에 매달려 평생을 보냈다.
 우연히 찾아온 전부인 덕에 죽기 전에 인생을 돌아보지만 시덥잖은 욕망에 허우적댄 것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다.
 병구완에 몰두해 딸을 살려낸 김덕이 여사는 그래도 목적을 갖고 의미있는 삶을산 게 아닐까? 딸만 바라보던 엄마가 제 중병에 눈감다 떠나버려서 의지할 데 없는 딸은 정말 혼자 남게 되었다.
 이렇게 떠나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건 쓸쓸하지만 겁나는 일이다. 두 사람의 시간은 다름 아닌 우리의 시간이다. `작가의 말’에 인용된 성경구절처럼 “네 보물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을” 텐데 보물도 마음도 어디 있는지 모른 채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죽음 앞에 당도한다.
 “엉뚱한데 몰두하고, 자기가 욕망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고, 아직 어려서 그렇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그런 게 사람의 시간을 거의 채우고 있어요. 사람들은 시간을 수직적으로 쌓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가 쌓아가는 삶에만 함몰돼 있죠. 그러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요.”
 이렇게 소멸하고 말 인간이지만 현실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잔인하다. `나프탈렌’의 인물들은 수갑 찰 일이 두려워 사람을 생매장하고 다른 여자와 부부가 된 옛 남친을 불러내 몰래 자기 향수를 뿌린다.
 홍수로 쑥대밭이 돼버려 시름 깊은 마을에 내려가 폐병 앓는 딸에게 잡아줄 닭을 찾는 엄마에 이르면 이 잔인함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결국 몇 명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껏 세 차례 소설집을 낸 작가는 그로테스크하다거나 잔인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현재적인 것이고 가감 없이 써낸 것”이다.
 `나프탈렌’은 독자에게 작가의 첫 장편이지만 작가에겐 내놓지 않은 작품이 있어 두 번째 장편이다. 소설에 나프탈렌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작가는 “미미한 냄새정도를 남기고 소리 없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찾다가 나프탈렌을 찾았다”고 했다. 현대문학.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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