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찰나의 순간, 맛깔나는 입담으로 풀어내다
  • 이경관기자
생의 찰나의 순간, 맛깔나는 입담으로 풀어내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편집자로 살아온 저자 14년간 연재한 글 묶어 진솔한 언어로 담은 첫 산문집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서른아홉을 한 해 앞둔 나는 매일같이 솔로예찬에 침 튀어 대면서도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서른아홉에 아빠는 매일같이 매달리는 딸들에, 매일같이 쪼아대는 상사에, 매일같이 찔러대는 팀원들에 매일 같이 소주 병나발 안 불 수가 없었겠지요. 한 평생 성실함이 무기였던 아빠의 서른아홉… 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178쪽)
 툭, 내뱉는다. 생의 찰나의 순간을 담은 그녀의 글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김민정 시인은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와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하며 솔직한 언어와 역동적인 감각을 가진 시인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런 그녀가 14년간 여러 매체에 연재한 글을 묶어 발표한 첫 산문집 `각설하고,’는 시인이자 편집자로 살아온 그녀의 생에 대한 고민과 사랑과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그녀의 글은 맛깔 난다. 산문을 쓸 때는 주로 입말 위주로 쓴다는 그녀. 그 때문인지 그녀의 글은 친한 선배가 술 한잔 먹고 읊어대는 우리들의 흔하디흔한 인생사 같다.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미리 약속을 잡아 확실히 해두고 그 약속을 기대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데, 다정한 약속일수록 연약하다. 정말로 왜 그럴까?”(34쪽)
 1부 `말이란 말이다’와 2부 `용건만 간단히’에서는 시사 등 사회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과 함께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사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봄이면 고요한 숲 속 울울창창한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는 스님을 만날 수 있었고, 겨울이면 높디높은 산동네 아이들 틈에 빨간 산타 모자를 쓴 채 손을 흔드는 추기경님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풍경 그대로 그렇게 자연인 줄 알았는데, 그 자연 그대로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는데.”(53쪽)
 1부에 속한 `실은 저도 입을 고민합니다’는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유와 욕심에 대해 이야기 한 이 글은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이 있다. 이 시대 진정한 스승의 부재를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그녀의 글은 너무도 진솔해 울컥, 하게 만든다.
 2부는 한국일보에 연재한 `길 위의 이야기’ 중 알토란같은 이야기를 묶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편집자와 시인, 두 직업 사이에서 언제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가 이 연재를 위해 지금은 박살나 버린 블랙베리 휴대폰으로 매일같이 680자를 꾹꾹 눌러 담당 문화부 기자에게 전달했다는 것. 그녀는 원고 매수를 계산하기 위해 140자 트위터 화면에 한 자 한 자 채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3부 `시다, 수다’는 그녀만의 시론을 담았다. 시를 쓰게 된 시작부터 시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 시는 곧 그녀의 인생이었던 시인 김민정의 생을 오롯이 담았다.
 “오독이라는 이름의 고독을 느낄 때마다 나는 내 시 속으로 더 깊이 침잠하는데서 쾌락을 찾는 듯싶다. 상처가 있었던가 물론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 또한 상처를 준 적이 왜 없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사람이든 시든 기대란 걸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든 시든 빨리 포기하는 법을 익힌지 오래다.”(160쪽)
 4부 `시적인 순간들’은 생의 순간, 찰나의 시간을 목도하는 기녀의 기억 저장 공간이다. “결국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 보다 더 맞는 말을 찾아가는 여정 아닐까요.”(199쪽)
 5부 `그 사랑, 그 사람’은 그녀가 정의하는 사랑과 그녀에게 영감을 준, 시를 품고 있다. 
 그녀는 5부의 여러 글 속에서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렸지만 결국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정의의 영역이 아닐까. 참혹한 사랑도 사랑이고, 아픈 사랑도 사랑이다. 사랑은 시와 같은, 당신과 내가 빚어낸 감정의 교류, 그 무언가가 아닐까.
 `각설하고,’는 그녀가 바라본 일상이 시로 태어나는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그래 맞다. 사람들 때문에, 가 아니라 사람들 덕분에, 나는 여기 있는 것이다.”(7쪽)라고 썼다. 맞다. 그녀는 사람에, 시에 물든 사람 같다.
 김민정. 한겨레출판. 262쪽. 1만2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