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棺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어떤 나무의 말 전문, 9쪽)
너를 잃고, 나를 잃었다.
나희덕 시인의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고통, 그 고통의 깊이만큼 처절하고 절박하다.
시인은 1989년 등단 이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생명이 깃든 삶의 표정과 감각의 깊이에 집중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녀가 최근 발표한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우울이 짙게 깔린 채 죽음의 형상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의지는 죽음의 형상과 마주해 치열하게 다툰다.
“몇 방울의 피가 가로수에 섞이고/ 유리조각들이 아침 햇살에 다시 부서졌다/ 빛의 쐐기들이 눈에 박혔다// 핏자국마다 이슬이 섞여/ 잠시 네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래전 너와 함께 듣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른 풀 위로 난 바퀴 자국,/ 황급히 생을 이탈한 곡석이 화인처럼 찍힌 아침”(그날 아침, 40쪽)
그녀는 2011년 사랑하는 동생을 사고로 잃었다. 동생을 잃고 그녀는 상실과 부재의 고통 속에서 밤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가족의 죽음을 목도한 시인은 한 순간 말을 잃고, 시를 잃었다. 그 순간, 죽음을 쓴다는 것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모독과 같이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기나긴 밤과 같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문학이었다. 시였다.
그녀는 자기를 가뒀던 자폐의 시간에서 벗어나 타자와 소통하는 말들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 순간 그녀의 감정을 가장 잘 표출한 시가 이 시집의 표제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그녀는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고 또 치유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녀의 시는 더욱 단단해졌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평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나는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 하네”(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128쪽)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길을 나선 그녀. 이 시집 속 그녀의 시는 이별의 상처를 통과한 후 물기가 마른 듯 담담해져 내면에 깃들기 시작한 듯하다. 긴 터널을 통과한 후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과는 많이 달라졌다. 떠났던 말들이 돌아온 순간, 어둠이 걷히고 빛이 일었다. 그 빛을 따라 담담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결연하다.
그녀는 `시인의 말’에 “한 손은 사랑에게, 다른 한 손은 죽음에게 건네려 한다. 아니다. 사랑과 죽음을 어찌 한 손으로 감당할 수 있으랴. 누추한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여린 손등은 죽음 앞에, 거친 손바닥은 사랑 앞에.”라고 썼다.
그녀의 내려놓음. 여린 그 마음이 단단해지기까지의 고통에 울컥하다, 이내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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