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조국`야만의 세월’속 자라난 싹
  • 이경관기자
빼앗긴 조국`야만의 세월’속 자라난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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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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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 써온 김소연 작가, 처음으로 청소년소설 발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싹이라? 그렇다면 난 피를 머금고 자라는 싹이다. 일본 땅에서 흘린 조선인의 피로 자라는 싹.”(272쪽)
 꽃이 폈다. 척박한 땅에서 추위를 견디고 자란 꽃은 그 강인함만큼이나 향이 짙다.
 김소연의 장편소설 `야만의 거리’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배경 속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며 단단하게 자라는 청년 동천의 이야기다.
 이 책은 제1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 부문 대상작인 `명혜’를 비롯해 `꽃신’, `남사당 조막이’ 등 깊이 있는 역사 동화를 선보여 온 김소연 작가가 처음으로 쓴 청소년소설이다.
 신분제가 폐지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분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안북도 구성. 동천은 양반 아버지와 몸종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천이 살던 범골에 단발령이 닥치고 서당을 다니던 아이들은 소학교에 다니게 된다. 동천은 소학교에 다니며 더 큰 세상을 마주하고 싶은 꿈에 부푼다. 그는 결국 더 큰 세상, 더 큰 꿈을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
 “파멸과 죽음의 길이라뇨. 중위님, 뭘 잘못 아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조선인이 조선인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왜 파멸이고 죽음입니까? 도리어 조선인이 일본인인 척 가면을 쓰고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이 살아도 죽은 꼴이지요.”(384쪽)
 “조선인은 태어난 그 자체로 조선 땅의 주인이자 국민입니다. 일등도 이등도 아닌 유일한 인민이란 말씀입니다.”(386쪽)
 일본에서 동천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학업을 이어간다. 더 큰 인생을 펼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본행이었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동천은 그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운동가 박열과 위기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헌책방 사장 구마모토를 만나 일제 강점기라는 현실 속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답을 찾는다.
 김 작가는 주인공 동천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등 실존했던 인물을 만나 소설로서의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독자 스스로가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가게 안은 텅 비어 고요했다. 동천은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죽음은 상도 벌도 아니었다. 1923년 9월 동경에 머문 조선인에게 죽음이라는 숙명은 그저 한순간의 운으로 닥쳤다. 도대체 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는가? 그 며칠간 조선인에겐 죽어야할 이유도, 살 수 있는 명분도 없었다. 돌아서는 길모퉁이에 따라, 마주치는 사람에 따라 누구는 처참한 죽음을 맞고 누구는 살아서 몸을 숨길 뿐이었다.”(231쪽)
 동천은 관동대지진을 겪고 그로인한 일본인들의 분노가 조선인 학살로 이어지는 시대의 야만적인 행태를 목도하며 분노에 휩싸인다. 그는 시린 시대를 겪으며 조선인이라는 강한 자각과 함께 자신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한다.
 “내가 일본에서 보낸 칠 년은 야만의 세월이었다. 야만이 지배하는 거리에서 야만에 물들지 않으려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런데도 야만에 젖어들어 또 얼마나 괴로워했던가.”(397쪽)
 악마가 지나는 길, 그 한 가운데 서 있던 청년, 동천. 그는 소설의 말미, 여대생과의 사랑도 포기한 채 만주로 떠난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활약했던 독립군들의 치열한 삶과 함께 더욱 단단해지는 동천의 성장이 기대된다. 창비. 401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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