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눈길에 서린 위로... 타인의 울음에 대한 예의
  • 이경관기자
서툰 눈길에 서린 위로... 타인의 울음에 대한 예의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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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만나요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나를 볼 수 있는 사람,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자신만의 시선으로 내 마모된 몸을 완성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그곳이 어디든 쉬지 않고 달려갔다. 타인의 꿈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문들이 있었다.”(116쪽)
 울컥임을 참는다. 섣부른 위로도 하지 않는다. 그저 서툰 눈길로 바라봐 준다.
 `2013 신동엽문학상’과 `2014 젊은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조해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목요일에 만나요’.
 조 작가는 이 책 속에 담긴 아홉 편의 단편에서 소외되고 버려져 결국 혼자 남은, 그러나 소통의 희망을 놓지 않는 `타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울음을 터트릴 듯하다. 조 작가의 예민한 감각이 포착한 인물들의 상처와 그를 통한 자기성찰은 담담한 문장과 어울려 빛을 발한다.
 “그저 너무도 쉽게 내 감정을 자기연민이라는 화두 앞에 서게 하는 그 장면, 그러니까 J를 위한 수술을 마치고 혼자 잠에서 깼던 그날의 고독하고 추웠던 저녁 병실이 떠올라 조금, 눈가가 젖을 만큼만 아주 조금 울었을 뿐이다.”(26쪽)
 단편 `PASSWORD’는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베로니카의 이야기다.
 베로니카는 양부모의 관심을 갈구했지만 양부모는 언제나 한 발짝 멀리서 그녀를 대했다. 어느 날 그녀는 양부모가 아픈 친딸의 신장이식을 위해 딸과 동일한 혈액형인 그녀를 입양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날 이후 그녀는 세상에 버려지기만 하는 자신을 연민이 아닌 분노로 바라본다.
 “어딘가 치명적으로 아픈 사람들은 어디서든 그렇게 서로를 쉽게 알아보고 위로를 해준다는 사실이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22쪽)
 자신의 근원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자신을 거부하는 생모 앞에서 그녀는 상처받는다. 고모의 집에서 지내던 그녀는 이웃 집에 홀로 남겨진 다운증후군 소년과 만난다.
 “늘 죽음을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연속된 시간을 산다기보다는 분절된 현재만을 향유한다. 그들에게 과거는 추억이 되지 못한 채 덤덤하게 시선의 바깥을 스쳐가고, 미래란 흑백의 필터로 찍은 현재의 모사본에 지나지 않는다.”(33쪽)
 단편 `북쪽 도시에 갔었어’는 사랑을 잃고 서로를 만났지만 결국 헤어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다. 그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과 사랑은 소설 속에서 남루하고 쓸쓸하게 그려졌다.
 표제작 `목요일에 만나요’는 자신이 낸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차마 볼 수 없어 사라진 동생 K를 기다리는 누나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동생에게 전달되지 않을 엽서에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눌러쓴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서울에서 누나가.”(81쪽)
 단편 `영원의 달리기’는 연인을 잃은 남자와 타인의 꿈을 찾아가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저 당신이 거기 있었고 내가 당신을 발견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주길 기도할 뿐,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언젠가 당신도,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었고 만남과 이별을 통하여 우리의 존재가 완성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 실패한 선택이었어도 마지막은 늘 그러했고, 그것이 내가 끊임없이 달리는 이유일지 모른다.”(117쪽)
 그는 사랑했던 연인의 궁핍을 그녀의 자살 후에야 알게 됐다. 그 후 그는 마치 형벌을 받은 사람처럼 웃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그의 앞에 타인의 꿈을 찾아가는 존재가 나타나 그의 상처를 다독인다.
 “우리의 만남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 이별 역시 예정된 것임을 당신은 아직 모른다. 만남과 이별을 통하여 우리의 생애가, 달려가는 그 길들이 고통 속에서 단단해진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132쪽)
 조 작가는 아홉 편의 소설을 통해 말한다. 때로는 서툰 눈길의 위로가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슬픔 앞에서는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처받은 이들의 통곡은 어딘지 모르게 서로 닮아있다. 서로를 다독이는 이들의 연대는 미약하지만 그 무엇보다 따뜻하다.
 조해진. 문학동네. 26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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