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새벽, 그 속살을 어루만지는 시의 숨결 속으로
  • 이경관기자
고립의 새벽, 그 속살을 어루만지는 시의 숨결 속으로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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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살 흐르다'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거실에서는 소리의 입자들이 내리고 있다/살 흐르는 소리가 살 살 내리고 있다/30년 된 나무의자도 모서리가 닳았다/300년 된 옛 책장은 온몸이 으깨어져 있다/그 살들 한 마디 말없이 사라져갔다/살 살 솰 솰 그 소리에 손 흔들어주지 못했다/소리의 고요로 고요의 소리로 흘러갔을 것이다/조금씩 실어나르는 손이 있다/멀리 갔는가/사라지는 것들의 세계가 어느 흰빛 마을을 이루고 있을 것// 거기 가늘가늘 소리 들린다// 다 닳는다// 다 흐른다// 이 밤 고요히 자신의 살을 함께 내리고 있다.”(`살 흐르다’ 전문)
 삶의 고뇌를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해 내는 신달자<사진> 시인, 그녀의 열세 번째 시집 ’살 흐르다’.
 1964년 등단 이후 50년 동안 쉼 없이 시를 써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오롯이 자신 그대로를 담았다. 일상의 소재와 언어는 그녀의 손끝에서 시가 됐다. 이 시집에 실린 70편의 시들은 어둠이 세상을 지배한 밤, 그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는 고립의 새벽을 노래했다.
 “바람 서늘한 날 당신 내 무릎 베고 눈감았다// 지금 그곳 환한가/ 흰 뼈가 마지막 빛으로 일어서고/ 이제야 소리 되지 않았던 속내를 수습하고 있다면 환하리// 법원읍 오현리 산 발밑에서 늘 윙윙거렸다/ 조마조마 지반 흔들리고/서로 헌 진물 모른 척 지나가던 세월/일으킬 수 없는 당신 몸 위에서 내 마흔 옥죄이는 알몸을 허허롭게 비벼 보기도 했지만/당신 가고 나 생각보다 찬란하지 않았어 여보……/쭈뼛/살얼음이 입속에서 어슥어슥 시려서”(`10주기(週忌)’ 부분)
 어느 덧 일흔을 넘긴 시인은 질곡의 세월동안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을 시에 담았다.
 그녀는 대한민국문학상과 한국시인협회상, 대산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비롯해 은관문화훈장까지 받으며 화려한 시인의 삶을 살았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했고, 의지하던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떠나보냈으며 암에 걸려 긴 투병을 하면서도 꿋꿋이 홀로 세 딸을 키웠다.
 고통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그녀의 시는 삶의 곡절마다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해 우리들의 삶과 맞닿았다. 어느새 눈물이 메마른 듯 목 놓아 울지도 않는 시 속 화자들은 더욱 애처롭다. 그녀는 삶 속에서 끝없이 마주하게 되는 이별, 그 처연함을 담담하게 읊조린다.
 “그래… 오래전에 잃어버린 진주알은/지금 겨울밤 3시/바닥난 촛불 눈물에 구르고 있으리/어느 한 알은/ 얼어 곱은 너의 손으로 형상이 바뀐다/모른 척할 수 없는 세월이/다시 툭 신발 끈을 푼다/거기 아득한 바닷가 하늘이 터진 천장을 향해/눈물에 구워지는 진주알은/시간의 온기를 기억하려 크게 몸을 뒤집는다// 맨발이라는 것을/이미 그 바닷가에 신발을 벗어 놓고 와 버렸다는 것을/거기 한 알쯤 진주알이 있을까/ 거대한 고독의 은유 코끼리가 바다를 거니는 나라/모래로 허기를 메우다가/바다 가장자리에서 잠들고 천둥소리 듣지 못했다/진주알은 구르고 지구의 구석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질 때/지구의 반쪽이 무너지는 소리 듣지 못했다/밤은 비어 있어/오늘도 진주알을 찾기 위해 지구의 밑바닥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이 불치의 겨울밤.”(’무너지는 소리 나는 듣지 못했다’ 부분)
 미처 피지도 못한 꽃들이 졌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세월호가 침몰했다. 수학여행을 떠난다며 즐거워했던 아들, 딸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또 아직까지도 저 차디찬 바다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그들에게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많은 우리들은 눈물이 마를 때까지, 바닷물이 마를 때까지 통곡한다. 서글픔이 가득한 그 바다에서 그녀의 시를 읊고 싶다. 지금도 검푸른 바다에서 한 없이 흐르고 있을 그들에게, 또 그들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서툰 위로라도 건네기 위해.
 신달자. 민음사. 133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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