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미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는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각각 흰옷과 검은 옷을 입혀 농구공을 주고받도록 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흰옷 입은 학생들이 공을 주고받은 횟수를 세어보라고 했다. 이들이 공을 패스하는 그 사이로 시커멓고 키가 큰 고릴라가 팔을 흔들며 지나갔고 그 장면도 물론 찍혔다. 동영상이 끝난 뒤 대니얼은 사람들에게 농구코트에 선수 이외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물었다. 고릴라를 보았다고 응답한 사람은 절반뿐이었다.
이것이 저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다. 이 실험이 뒷받침된 것이 ‘무주의 맹신(無注意 盲信 inattentional blindness)’이란 이론이다. 눈으로 특정 위치를 보고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쏠려 시야에 있는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말하자면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다는 뜻을 지닌 용어다. 길을 가면서 핸드폰 문자에 열중하다가 눈앞의 전봇대에 부딪히는 경우 따위다. 흔히 무슨 일을 보고도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줄 모르는 사람을 핀잔할 때 쓰는 우리네 속된말 ‘당달봉사’를 떠올리게 하는 개념이다.
유엔이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전 세계가 북한인권 실상을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거기가 사람이 살 만한 곳이더라는 ‘나홀로 견문보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말처럼 자기가 본 것만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만약 북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와서 하는 말이라면 그걸 진실이랄 수 있겠는가. 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온 것을 북한의 실상인 양 말하는 것도 온전한 참이 아니다. 북한이 보여주거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고 정작 ‘고릴라’는 못 본 것이겠기 때문이다. 혹 다른 무엇을 보고도 부러 못 본 체 비껴가는 거라면 그건 무주의 맹신 오류보다 먼저 도덕적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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