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도 간혹 등장하지만 로마시대에는 도장이 새겨진 반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도장이 전래된 것은 중국 한(漢)나라가 낙랑을 지배할 당시로 알려져 있다. 중세유럽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사인은 당시 귀족과 지식인 등 식자층들의 특권 의식이 빚은 `배움 과시용’이었다. 대부분 글자를 몰랐던 일반 서민들은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도 본격적으로 사인을 활용한 것은 문맹률이 크게 낮아진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우리나라 조선조에선 신분 높은 계층에서 서양의 사인과 비슷한 수결(手決)이 사용되기도 했다. 수결은 자기 이름을 초서(草書)로 풀어쓰거나 자체(字體)를 뒤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남이 알아보지못하도록 했다. 관직에 있는 자는 사심없이 공무를 처리한다는 뜻으로 `일심(一心)’자를 변형한 수결을 사용했다.
서명·날인토록 되어 있는 부동산계약서는 둘다 모두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만 해도 효력이 성립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름을 쓰든 도장을 찍든 그 모두가 본인의 계약 의사를 입증하는 것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金鎬壽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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