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호국사찰 ‘망덕사’ 터 출토 유물 특집전
  • 황성호기자
신라의 호국사찰 ‘망덕사’ 터 출토 유물 특집전
  • 황성호기자
  • 승인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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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5일~7월4일까지

▲ (사진 왼쪽부터)연꽃무늬수막새, 용얼굴무늬사래기와, 용얼굴무늬수막새, 청동정병.
[경북도민일보 = 황성호기자]  국립경주박물관은 5일부터 7월 4일까지 석가탄신일을 맞이해 특집진열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를 전시한다고 밝혔다.
 이 특집진열은 경주 망덕사터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처음 전시하는 자리이다.
 경주시 배반동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덕사(望德寺)는 679년(문무왕 19년)에 세운 신라의 호국 사찰이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674년 신라에 패한 당나라는 이듬해 50만 군사를 동원해 신라를 다시 공격했다.
 신라는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어 불심으로 당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당 고종(재위 650~683)은 두 번씩이나 공격에 실패하자 그 까닭을 알기 위해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
 그러자 신라에서는 사천왕사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대신 지은 새 절을 보여주며, 당 왕실의 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천왕사라고 거짓으로 말했다.
 당의 사신은 이 절이 사천왕사가 아님을 알아채고 “망덕요산(望德遙山)의 절이다” 라고 하자 신라는 사신을 매수했다.
 당으로 돌아간 사신은 “과연 신라에서는 사천왕사를 지어 황제의 만수를 비옵니다” 라고 거짓 보고했다. 그 뒤 이 절의 이름은 망덕사가 되었다.
 현재 절터 입구에는 당간지주가 서 있다. 1969~1970년 문화재관리국의 발굴 때 금당터, 강당터와 함께 동쪽과 서쪽에서 목탑터가 발견됐다.
 삼국사기에 망덕사에는 13층 목탑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어, 이 목탑터들은 신라의 목탑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품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말기 양식의 기와가 대부분이며, 고려시대 유물도 확인됐다. 따라서 망덕사는 최소한 고려 초까지 존재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진열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연꽃무늬 수막새, 용얼굴무늬(龍面文) 수막새, 덩굴무늬 암막새 등과 고려시대의 공양구들을 선보인다. 망덕사터에서 출토된 기와는 사천왕사터의 출토품과 거의 비슷하다. 특히 연꽃무늬 수막새들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무늬 변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려시대 공양구에는 청동 정병(淨甁) 1점, 금동 그릇 5점, 불상 대좌 1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정병은 군위 인각사 출토품(통일신라시대)과 전체적인 형태는 비슷하나 동체부가 좀 더 둥근 형태로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편, X선 형광분석기를 이용해 이 공양구들의 합금비와 도금 방법을 분석한 결과, 청동 정병은 구리 80%, 주석 11%, 납 8% 등으로 합금했고, 금동 그릇은 청동 위에 수은 아말감법으로 도금했음이 확인됐다. 납을 넣어 합금한 것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녹여 만들 수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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