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황사영 백서사건’은 황사영이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막아달라고 청나라 북경에 있던 프랑스 주교에게 호소문을 보내려다 발각돼 처형된 사건이다. 그 유배 18년 동안 다산은 방대한 분량의 책을 썼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같은 숱한 명저들이다. 한데 그 저술들보다 먼저 살피고 싶은 건 그의 각별한 가족 사랑이다. 그 가족 사랑의 증표가 하피첩이다.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가 우러나온다.’ ‘항아리가 대체로 완전해도 구멍 하나만 있으면 못쓰듯이 모든 말을 다 미덥게 하다가도 거짓말을 한 마디만 해도 도깨비처럼 되니 늘 말을 조심해라.’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아들에게 보낸 하피첩의 가계(家戒;집안의 가르침)엔 엄격함과 사랑이 가득하다.
서지학자들은 다산의 여러 가지 필체를 골고루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하피첩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하피첩에는 이전의 다산 글씨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 전서(篆書)가 포함된 것이 특이하다고 한다. 14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에서 열린 경매에서 다산의 하피첩이 7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새 주인은 국립민속박물관. 12×20cm의 천 조각에 글씨 쓴 한지를 붙인 3권 46장의 보물가격이 9년 전 진품명품의 감정가 1억 원에 비해 훌쩍 높아졌다. 아마 그 보물의 가치도 가치려니와 그가 차지하는 민족문화사적 무게에 대한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예우일 것이다. 다시금 다산의 큰 족적이 경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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