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뭐고?
  • 김용언
시(詩)가 뭐고?
  • 김용언
  • 승인 201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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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까막눈이’는 ‘글을 보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이다. 한자어로는 문맹(文盲)이다. 임철우의 ‘등대 아래서 휘파람’에 까막눈이의 용례가 나온다. “아가, 이 편지 조까 큰 소리로 차근차근하게 읽어 주라이. 우리 아들한티서 온 편진디 , 내가 워낙 까막눈이라서 당최 알 수가 있어야제 원.”
 시쳇말로 할머니에게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다. 객지를 떠도는 아들한테서 날아온 편지이건만 글을 모르니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한글은 읽기 쉽고 쓰기도 쉬운 글자인 게 본질이다. 오죽하면 꼬맹이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동화책을 읽을 줄 알 정도다. 한글은 문자가 없는 다른 나라 종족들도 배워서 쓰고 있을 만큼 국제사회에서 인기 만점인 글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라 안에는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까막눈이들이 있는 게 현실이다. 밥벌어 먹고 살기에도 바빠 한글 배우기에 시간을 쪼개지 못한 노인들이다.

 칠곡군에 사는 까막눈이 할머니들이 시집을 펴냈다. 문해(文解)교육을 받은 ‘할매’들이 쓴 89편을 한데 모아 엮어낸 시집이다. 삐뚤빼뚤 멋대로 쓴 글씨부터가 예술품인 것만 같다. 소화자 할머니가 난생 처음 써본 시(詩)가 시집의 제목이 됐다. 그 제목이 ‘시가 뭐고?’다.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헛둥지둥 왔는데/ 시를 쓰라 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까막눈이 할매’들은 더이상 까막눈이가 아니다. 이들 ‘늦깎이 시인’들은 이제 자서전 쓰기에도 나섰다고 한다. 연극 공연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듬이 연주단, 할머니 인형극단, 도마 난타도 한다. 한번 뜬 눈이 ‘세상은 넓고 할일도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는 모양이다. 까만 세상 살아온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 받으려는 듯 할매들의 행보가 거침 없어 보인다. 칠곡군이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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