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붉은 노을 속으로 기러기 서너 마리 날고 있다. 노을이 곱다. 그것도 잠깐이다. 기러기 울음소리는 그 노을 속에 가뭇없이 묻혀버린다. 이윽고 노을마저 바람처럼 사위고 어둠이 하늘을 덮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을 밝히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은 기나긴 띠를 이룬다. 새도 사람도 모두가 제 깃들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삼백예순날 전에 새해라고 부르며 환호했던 그 해가 묵은해 되어 그예 영원의 함지(咸池)로 넘어가고 있다. 이제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내려야할 시각이다.
매일 뜨는 해가 변함없이 똑 같듯이 지는 해 또한 그믐날이라서 다를 수 없다. 그런데도 유난히 한해의 마지막 해넘이는 특별한 시간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산마루를 넘어가는 저 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이 각별한 거다. 내일이면 한 살을 더 먹고, 학년 하나가 올라가고, 모든 사회적 관계망에서 나이테가 하나 더 완성되는 시간인 까닭에 이 순간만은 모두가 겸허해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묵은해를 영원 속으로 띄워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이하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다. 새해는 올해 못다 이룬 것 이룰 수 있는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고 올 한해 마음만 먹었지 착수도 못했던 일들 시작할 기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또 내후년에 해야 할 일의 바탕을 다져야 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수십 만 인파가 한파와 교통지옥을 헤쳐 숙박비 터무니없고 밥값 턱없는 동해안 일출 명소를 애써 찾아 새해 아침의 솟는 해를 두 눈으로 맞이하는 것도 이 같은 희망 다지는 일 아니겠는가. 을미년을 보내며 독자님들께 송구영신의 인사로 원철 스님의 글 한 줄을 빌린다. ‘나는 묵은해 보낼 테니 그대는 희망찬 새해 맞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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