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1975년 경주 옛 궁궐터의 연못인 안압지 발굴 때 진흙 속에서 작은 사과 크기의 주사위 하나가 나왔다. 재질은 참나무였고, 오늘날 흔히 보는 정6면체 주사위와는 달리 14면체였다. 정사각형 6개면과 육각형 8개면이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물건의 진품은 안타깝게도 유물 보존처리 도중 불타버렸다. 지금 그 복제품이 경주에 있다. 이것이 곧 주령구(酒令具)다. 풍류놀이를 하면서 좌중의 누군가에게 술을 마시도록 강제할 때 명령하는 벌칙 선택의 용구인 거다.
생각하면 정육면체가 아닌 주사위가 고대 우리나라에서 제작됐다는 게 놀랍다. 역할을 부여하거나 벌칙을 지정한 놀이기구란 사실은 각 면에 새겨진 글귀로 알 수 있다. 안압지 주령구엔 숫자 아닌 한문 4자 문구가 14개 면에 새겨져 있는 거다. 단번에 술 석잔 마시기, 소리 없이 춤추기, 얼굴 간지려도 꼼짝 않기, 시 한 수 읊기, 누구에게나 마음 내키는 대로 노래시키기 등이다. 임금과 귀족들이 어울려 이것을 던지며 태평성대를 누렸던 신라시대 상류층 놀이광경을 상상케 된다.
경주시가 동궁원 주차장 쪽에 주령구 형태의 공용화장실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두 개의 주령구가 이어진 모습의 건물로 짓는다는 거다. 지난 2014년 정부부처의 아름다운 화장실대상 공모에서 알(卵) 형태 화장실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경주시다. ‘알’이 신라시조 박혁거세 탄생설화의 주요 모티브로 서라벌의 상징이듯이 주령구 또한 신라 놀이문화의 상징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유물이다. 그 주령구를 신라 유적관광지의 편의시설물 형태로 되살려내는 경주시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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