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하고 대중적인 서정성으로 따뜻한 사랑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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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하고 대중적인 서정성으로 따뜻한 사랑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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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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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후기낭만음악 거장 작곡자 ‘라흐마니노프’ 
▲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경북도민일보]  △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 라흐마니노프
 클래식음악에 대해 경북도민일보에 기고를 시작한지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이 필자에게 질문을 가장 많이 한 것은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은 무엇인가요?” “어떤 작곡자를 가장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라고 말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현대적이며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느낌이라 그의 음악은 여느 작곡자와는 쉽게 구분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깊은 서정적인 모티브와 따뜻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라흐마니노프를 처음 듣는 사람들도 단 한번만 감상하면 곧장 매료되어 그의 음악에 완전히 중독되어 버리는 끌림이 강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의 대중음악, 라흐마니노프
 대략 10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이지만 한때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일본 드라마와 할리우드 영화가 큰 인기를 누릴 때가 있었다.
 바로 얼마 전 ‘라흐마니노프’를 주제로 사용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할리우드 영화 ‘샤인’이다.
 드라마의 소재가 워낙 독특해서 우리나라 역시 2014년도에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가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이 세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드라마와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삽입해서 클래식 마니아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드라마나 영화음악의 소재로 사용될 만큼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대중적인 서정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극한으로 몰아가는 ‘로맨티시즘’의 아름다움은 특정 계층만이 즐기는 차별화된 음악이 아니라 누구나가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대중성 있는 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오늘은 러시아의 후기낭만음악의 거장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의’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귀족집안의 몰락 속에 성장한 라흐마니노프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4월 1일 러시아의 ‘노브고로트’의 ‘일멘’ 호수근처의 ‘오네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라흐마니노프’의 집안은 러시아 최고 귀족출신 가문이었고 아버지는 러시아의 황제 근위 대장이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귀족집안출신으로 러시아 장군의 딸이었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가문이었다.
 어머니가 결혼 때 갖고 온 땅문서와 결혼 지참금으로 그의 가족은 넉넉한 귀족으로 아주 윤택하게 살았다.
 가족들은 어린 ‘라흐마니노프’를 ‘세료자’라는 애칭으로 그를 불렀고 그의 가족은 여느 귀족처럼 부족함 없이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며 살았다.
 당시 러시아의 귀족들은 귀족의 격에 맞게 취미를 갖는 것이 그들만의 생활방식이라 그의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고 악기도 쉽게 배우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세료자의 나이 7세 때 슈베르트의 가곡을 귀로 한번만 듣고 즉시 피아노로 완벽하게 연주한 일화가 있는데 이 모습을 본 그의 부모는 아들의 재능이 남달라 피아노선생에게 음악교육을 시키게 되었고 이후로 ‘세료자’는 그의 천재적 음악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 선생님인 ‘안나’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일반교양, 외국어 등을 함께 가르쳐주었을 만큼 어린 ‘세료자’의 유년생활에 큰 방향타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세료자의 풍족한 생활과 음악교육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무리한 사업투자를 하여 집안의 가세가 기울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그의 가족은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는데 다행이도 낡은 방한칸짜리 아파트 정도는 마련할 수 있어서 좁은 아파트에서 온가족이 복닥거리며 비바람과 추위를 면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라흐마니노프’는 최고출신의 귀족이었기에 군에 입대하면 장교가 되어 높은 지위를 얻었어야만 하지만 집안의 형편으로 인해 군사학교의 수업료는 어림도 없었다.
 다만 ‘세료자’의 앞날을 위해 그의 부모님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최고귀족출신이라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할 수밖에 없는 학교를 선택하여야 했었는데 선택은 단 하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밖에 없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의 불행은 이렇게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세가 기울고 연이어 세료자의 누이 1명이 급사하였고 이 상실감에 낙담하여 ‘세료자’의 아버지는 남은 자식들을 아내에게 맡기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가출을 해버렸다.
 ‘세료자’의 형 또한 기울어진 가세에 비관하여 가족을 떠나 소년단에 자원입대하였고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세료자’ 역시 현실에 탈피하려 음악원 수업도 등한시 하며 탈선을 일삼으며 하루하루를 건달 같은 생활을 하였다.
 정규교육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만큼 비정상적인 생활이 반복되면서 세료자의 가족은 특단의 조치로 그의 사촌형인 ‘니콜라이’가 살고 있는 모스크바로 강제로 보내어지게 되었다. 당시 사촌형 ‘니콜라이’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유명한 음악교수였기에 ‘세료자’의 음악교육에 적격이라고 가족들은 생각하였다.
 아주 엄했기도 했지만 사촌형의 음악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구성원의 의무와 역할까지도 ‘세료자’에게 헌신적으로 가르쳐주었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의지할 곳 없던 ‘세료자’는 심정적으로 큰 위안과 안정을 사촌형 니콜라이로부터 받을 수 있었고 그의 도움으로 그는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었다.
 사촌형인 니콜라이를 만나기 전의 ‘세료자’는 어땠을까? 그는 변덕이 죽 끓듯이 심했고 포악했으며 폭력적이고 남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는 ‘자기 자신만이 최고’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생활에서 규칙적이고 모범적인 성숙한 사회인으로 변모한 ‘세료자’, 만약 사촌 형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세료자’는 방탕아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었고, 오늘날 ‘라흐마니노프’의 불멸의 명곡들을 우리는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 성장을 통해 탄생한 피아노 협주곡 2번
 라흐마니노프가 22세 되던 해인 1895년에 교향곡 1번을 완성했다. 2년 뒤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했지만 당대 러시아음악을 주도했던 러시아 5인조(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제정 러시아의 작곡가 모임.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그르스키, 보로딘, 큐이, 발라키레프의 다섯 명의 작곡가)의 혹평(“이 작품은 애굽의 재앙이 계획된 교향곡이다”)으로 공연이 실패하고 만다.
 그 뒤로 큰 충격을 받아 갑작스러운 졸도와 발작이 자주 있었고 생각 없이 멍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었다고 한다. 그런 슬럼프는 4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작곡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작곡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져 결국 모스크바 정신과 명의인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최면요법과 자기암시 요법을 처방하여 치료하였고 다행히 치료에 효과가 있어 그는 피아노 협주곡 작곡에 다시 도전했다.
 1901년 불후의 명작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고 자신의 정신심리치료를 해준 ‘달’ 박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곡을 헌정하게 된다.
 이 작품으로 인해 라흐마니노프는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작곡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다.
 1904년에는 러시아의 최고의 상인 글린카 상을 받게 되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에는 깊은 감정의 골, 심오한 긴장된 힘과 러시아 정서가 담긴 시적 서정성이 가득한 작품으로 그의 천재적 예술성이 잘 표현되어있다.
 이 작품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과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수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이 앞 다투어 연주하는 최고의 인기 피아노 협주곡이 되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모두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악장 모두가 단 한순간이라도 흘려 들을 수 없을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 일반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1악장 Moderato 처음부터 들려오는 멜로디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 이 음악”하며 탄식을 자아내는 친숙한 멜로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흘러나오는데 독자 여러분들의 귀를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2악장 Adagio  sostenuto.는 라흐마니노프의 천재성을 잘 표현해주는 악장으로 꿈꾸듯한 서정성이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감정의 위로를 전해준다.
 제3악장은 Allegro scherzando로 매우 기교적으로 현란하고 웅장한 악장이다. 곡의 절정으로 치달을 때 즈음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라흐마니노프 악곡의 기법적 극치를 감상하고도 남을 만큼 감동을 줄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끝까지 감상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단 한번의 감상으로 당신은 ‘라흐마니노프’의 열렬한 팬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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