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어린 왕자’를 대대로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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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어린 왕자’를 대대로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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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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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활동 공로로 프랑스 파리 팡테옹 국립묘지에 안장된 흑인 여가수 조지핀 베이커(1906~1975). 미국 미주리주 출신인 베이커는 열아홉 살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재즈 가수로 스타덤에 오른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자유의 도시 파리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베이커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무대에 서면서 비밀리에 레지스탕스에 가입해 첩보 요원으로 활동한다.

프랑스 정부는 베이커의 이런 삶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여름 베이커의 팡테옹 안장을 결정했다. 나는 이를 계기로 ‘세계인문여행’ 104회에서 팡테옹 이야기를 한번 썼다.

그 후 나는 베이커의 팡테옹 안장식과 관련한 후속 보도를 주시했다. 안장식을 다룬 신문을 읽으면서 조금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커의 관(棺)에는 그의 유해 대신 고향 세인트 루이스에서 가져온 흙을 넣었다는 것이다. 모나코 공원묘지에 있는 유해를 그대로 두고 싶다는 유족의 뜻을 존중해서다.

팡테옹에는 베이커처럼 유해가 묻혀 있지 않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앙투앙 드 생텍쥐페리(1900~1944).

비행사이며 소설가인 그는 44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다. 그는 스물여섯에 민간항공사에 입사해 비행사의 인생을 시작했다. 주로 우편 비행기를 몰았다. 세계 최초로 대서양 단독무착륙 비행에 성공한 린드버그도 우편 비행기 조종사였다.

생텍쥐페리는 비행사로 보통 사람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느꼈다. 그의 시와 소설에는 사막 비행과 같은 경이로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있다.

팡테옹에서 만난 프랑스의 아이콘

그는 2차세계대전이 벌어지자 프랑스공군에 입대해 정찰기를 조종했다. 그리고 1944년 7월 31일 정찰 비행을 나섰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1980~1990년대에는 생텍쥐페리의 실종과 관련된 기사가 종종 외신을 타곤 했다. 정찰 비행에 나섰던 비행기로 추정되는 파편 조각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다는 식이었다. 프랑스 국민작가의 유류품이라도 확인하려는 프랑스인의 간절함이 반영된 기사였다.

1998년 마르세유 남쪽 바다의 한 섬에서 어부가 그물에 걸려 올라온 생텍쥐페리의 은색 팔찌를 발견했다. 이 팔찌에는 자신의 이름과 아내 이름 콘수엘로, 그리고 미국 출판인 레이널 & 히치콕 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2000년에는 마르세유 남쪽 바닷속에서 잠수부가 생텍쥐페리가 조종한 비행기 잔해를 발견했다. 이 잔해로 인해 프랑스인은 한동안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프랑스 정부는 2004년 공식적으로 이 잔해물이 생텍쥐페리가 몰던 비행기 잔해임을 인정했다.

팡테옹에 들어가면 드넓은 로비의 벽면과 기둥에 적지 않은 글귀가 음각되어 있는 게 보인다. 로비의 벽면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름 앞에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를 만나러 가는 팡테옹의 길모퉁이에서 뜻밖에도 생텍쥐페리와 대면하다니!

A La Memoire De

Antoine De Saint Exupery

Poete Romancier Aviateur

Disparu Au Cours D‘Une Mission

De Reconnaissance Aerienne

Le 31 Juillet 1944

앙투앙 드 생텍쥐페리의 기억

시인 소설가 비행사

항공 정찰 임무를 수행 중 1944년 7월 31일 실종

프랑스 정부는 이 명판을 1967년 제작해 팡테옹 로비에 설치했다. 오가는 이들의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어린 시절 가장 많이 읽는 책 중의 하나가 ‘어린 왕자’가 아닐까. ‘어린 왕자’를 읽은 청소년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 다시 그 자녀들이 ‘어린 왕자’를 읽는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대를 이어 전수된다.

생텍쥐페리는 1942년 가을 ‘어린 왕자’를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썼다. 책도 1943년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생텍쥐페리의 작품 활동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출간된다.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다. 영혼을 흔드는 문장에 밑줄을 치거나 일기장에 옮겨 적는 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오래전 읽은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 검색창에 ‘어린 왕자 명대사’라고 입력하면 부모 세대가 청춘 시절 수첩에 메모했던 문장들이 주르륵 나온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오직 마음으로 찾아야 해…’

‘여기는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사막은 조금 외롭구나.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나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 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장들을 접하면 ‘어린 왕자’를 마주했던,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신문로의 식당에서 조우한 ‘어린 왕자’

베이커의 팡테옹 안장식 기사를 읽고 나서 머릿속에서 생텍쥐페리에 관한 상념들이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 무렵 갤러리를 운영하는 지인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식사 장소는 신문로의 이탈리아 식당. 전에도 두어 번 와봤던 식당이다. 2층은 식당, 3층은 갤러리. 신문로는 정동길과 함께 서울에서 내가 애정하는 동네다. 축구협회, 체코대사관, 성곡미술관…. 골목골목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이 숨어 있는 격조 있는 동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억이 저장된 공간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미술관 입구 정면에 ‘어린 왕자’ 상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여기에 어린 왕자가 있었네. 식당에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나는 휴대폰을 꺼내 일단 사진부터 몇 장 찍었다. 이젠 더 이상 ‘어린 왕자’를 피할 수가 없겠구나.

한번은 TV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데 걸그룹 S.E.S. 출신 배우 유진이 남편과 함께 두바이를 여행하는 게 나왔다. 자동차를 타고 사막 한복판으로 들어가 사막을 감상했다. 부부가 낙타를 타는 장면도 보였다. 유진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속으로 ‘유진이 ‘어린 왕자’를 언급하면 좋을 텐데…’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진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 ‘어린 왕자’에서 읽은 사막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더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유진이 ‘어린 왕자’를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S.E.S.로 데뷔하기 전 ‘어린 왕자’는 소녀 유진의 가슴에 밤하늘의 별처럼 새겨졌고, 사막에 오니 불현듯 그 기억이 솟구쳐 떠올랐다. 유진이 고마웠다.

프랑스 출신 시인·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사막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프랑스는 제국주의 시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모로코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알제리와 모로코는 사하라 사막을 껴안고 있는 나라다. 생텍쥐페리는 우편 비행기를 몰고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으며, 사막에 불시착하기도 했다. 사막, 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프랑스 시인 오르텅스 블루(Hortense Vlou)의 ‘사막’이다.

‘그 사막에서 그는 / 너무도 외로워서 /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프로 여행가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여행의 종착지는 사막과 설산이다.’ 절대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사막과 설산이라는 뜻이다.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을 읽을 때마다 하늘에서 사막의 고독을 발견한 비행사를 생각한다.

오래전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콩나물시루처럼 승객을 태운 마을버스가 꼬불꼬불한 산복도로를 아슬아슬하게 기어올라 감천문화마을에 여행객들을 부린다. 산비탈을 따라 형성된 피난민촌에 미술을 입혀 부산의 명소로 새로 태어난 감천문화마을. 파스텔톤 색조에 빠져들어 그곳을 걷다가 뜻밖에도 ‘어린 왕자’를 만났다. 이곳에서 생텍쥐페리를 만나게 되다니! ‘어린 왕자’는 사막여우와 함께 산복도로 아래 바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기도 가평에 가면 프랑스 마을 ‘쁘띠 프랑스’(Petit France)가 있다. 쁘띠 프랑스의 로고가 ‘어린 왕자’다. 이름에 걸맞게 어린 왕자관(館)을 따로 만들어놓았다. 비행사 생텍쥐페리의 흑백 사진도 전시한다. 비탈진 마을 구석구석에서 ‘어린 왕자’들이 다양한 얼굴로 여행객들을 맞는다.

지구별에는 79억명이 산다. 그 세상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어린 왕자’를 품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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