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와 지방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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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와 지방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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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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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경북지역에 KTX가 지역에 들어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포항의 경우 지난 2015년 개통되었으니 벌써 7년이다. 이 귀한 KTX 님(?)을 모시기 위해 당시 30만 명도 넘는 지역민들이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열기를 보였던 기억도 있다. ‘서울로부터 두 시간 반’이라는 거리 단축 효과에 대한 기대가 엄청났다. 수도권의 활력이 KTX라는 굵은 핏줄을 통해 지역으로 쑥쑥 들어와 주길 바랐다고나 할까.

지역의 숙원사업에 딴지를 거는 것은 터부시되는 분위기라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우려도 없지 않았다. 당장의 편의는 늘어나지만, 궁극적으로는 수도권으로 역류하는 통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러면 KTX가 들어온 지난 7년간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한 번쯤은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거두절미하고, 가장 분명한 지표인 인구추세를 살펴보자. KTX가 건설되기 전의 10년간 포항의 인구는 여전히 증가 중이었다. 2005년에서 2015년까지 2만 명 정도가 증가해 4.5%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이때만 해도 포항은 전국에서 성장동력이 가장 강한 도시로 평가되곤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KTX가 들어온 2015년 추세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바뀐다. 이후 감소는 이어졌고, 결국 총인구로는 5년 동안 1만 명 이상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는 50만 인구 붕괴를 막기 위한 ‘주소 옮기기 운동’까지 펼쳐야 했다.

KTX 도입 이후 인구추세가 꺾여 버렸다니, 대체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인구 감소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KTX가 원흉이라 단정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숙원사업이던 KTX의 효과가 기대와는 달랐다는 것은 사실이다. 수도권의 활력을 지역으로 가져와 주는 장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런 결과는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었다. 도시 간 교통 시간이 줄어들면 소도시의 활성화에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도시의 역사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수도 런던으로의 과도한 집중에 시달리던 영국은 1944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런던 광역계획’을 수립한다. 이 계획은 누구나 아는 두 개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바로 그린벨트와 신도시이다. 런던이 더는 팽창하지 못하도록 아예 그린벨트를 둘러 개발을 제한해 버린다. 그리고는 그린벨트 외곽에 8개의 자족적인 신도시를 개발한다. 대도시 집중을 막고 인구는 분산하기 위한 최초의 계획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럴듯한 형식과는 달리 내용상으로는 완전한 실패였다. 신도시 거주민들은 그린벨트를 넘어 런던으로 출근하고 쇼핑을 갔다. 기껏 만든 도시들이 결국 런던의 부속품에 불과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잠만 자는 곳이 되다 보니 ‘베드타운’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다. 정책가들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대도시에 근접해서는 독립적인 소도시가 형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런던과는 충분한 거리를 두어야만 자립적인 도시가 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래서 도시학에서는 도시 간의 관계를 ‘중력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달은 지구 주변의 정해진 궤도를 늘 지킨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달이 지구에 가까워진다면 그 존재는 오히려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중력의 균형이 깨져서 달은 궤도를 잃고 결국은 지구로 끌려가 흡수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냉정한 중력이론을 도시들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자기의 궤도를 잘 지키던 도시라 해도 엄청난 덩치를 가진 대도시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나면 결국은 흡수를 피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포항은 광역시나 도청소재지가 아니면서도 50만 인구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대표 중소도시이다. 자기의 궤도를 잘 지키며 자리 잡은 별과 같다. 하지만 중력이론은 이런 도시들에게 더 파괴적일 수 있다. 수도권과의 고속철도를 놓는 것만으로도 눈에 보이지 않던 중력의 균형이 결국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포항제철의 서울 이주 문제로 지역이 들썩인다. 관련된 논쟁의 사실 여부를 넘어 지역민들의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번 ‘지역 소멸 방어’라는 차원에서 지역의 정책들을 돌아봤으면 한다. 보기에 좋은 정책, 누구나 기대하는 사업이라 해도 그 속에는 숨겨진 지역 소멸의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날카로운 점검과 대비가 없이 그저 좋은 것이 좋다고만 생각한다면 지역 소멸은 팬데믹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지방소멸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숙원사업 추진이 아니라 지역의 독자성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그에 기인한 바르고 고유한 정책철학이 아닐까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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