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의 문학소녀’ 詩 사랑 고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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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살의 문학소녀’ 詩 사랑 고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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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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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암송 달인’서두록 할머니 시 낭송 CD 제작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해야할 말이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지훈 `사모’ 中)
 대구시 중리동에 사는 서두록(90·사진) 할머니는 지그시 눈을 감은 뒤 이내 시를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외워서 읊는 시는 우리나라 것은 물론이고 영국시인 셸리의 `비탄’, 당나라 서예가 안진경의 `쌍학명’ 등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동네에서 `시 외우는 할머니’로 이름난 서 할머니가 최근에 애송시 20개를 추려 시 낭송 CD를 내 화제가 되고 있다. 할머니의 비상한 재주를 아깝게 여긴 이웃 주민이 주선해 18개 한정판으로 CD를 만든 것.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필두로 이육사의 `청포도’, 윤동주의 `서시’, 유치환의`바위’, 조지훈의 `사모’, 윤선도의 `오우가’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들이 90살 된 할머니의 낭랑한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다.
 처음엔 시 낭송 CD 제작을 한사코 사양하던 서 할머니는 “돌아가신 뒤에도 자식들에게 어머니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세요”라며 설득하는 이웃의 간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3.1 독립만세운동 발발 2개월 뒤인 1919년 5월 대구의 달성 서씨 집안에서 태어난 서 할머니는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과 여자아이의 배움에 부정적이었던 시대상황에도 배움의 의지를 꺾지 않고 16살 무렵에 겨우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이윽고 70살이 되던 해 노인대학에 입학하면서 어린 시절 못다 이룬 배움의 꿈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갔다.
 명문가 출신이어서인지 우리말과 한자는 기본적으로 꿰고 있었기에 적잖은 나이에도 시(詩), 서(書), 화(畵) 등을 이해하고 창작하는데 남다른 재주를 보였던 할머니는 각종 경연대회에서 수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서 할머니는 특히 시를 좋아해 90살을 넘긴 지금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시간을 이용해 시를 외우고 있다.
 지금도 시 50편 정도는 거뜬히 외울 수 있다는 할머니가 자주 낭송하는 시는 40년 전 2살 더 많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50 나이에 홀로 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읊곤 하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노천명).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행복하겠소’
 일찍 사별한 남편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는 서 할머니는 그러나 이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시(詩)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읽고 또 외우고 그렇게 살거예요” 90살 된 할머니는 어느새 열 일곱 문학소녀가 돼 있었다.
 대구/김재봉기자 kjb@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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