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사 1만명 양성하라”에 무릎꿇은 철도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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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 1만명 양성하라”에 무릎꿇은 철도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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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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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윤 환  (칼럼니스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밥통’은 영국 탄광노조였다. 1946년 국유화된 영국 석탄산업은 시설과잉, 인원과잉에도 불구하고, 강성노조로 인해 산업구조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노조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탄광노조가 총파업을 하면 정권이 바뀔 정도였다. 실제로 1973년 총파업 직후 보수당 정권이 무너졌다.
 석유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1980년대 초 전국의 탄광 중 75%가 적자였다. 영국 정부는 탄광노조의 압력 때문에 세금으로 어마어마한 적자를 계속 메워왔다. 채산성 악화에 따른 탄광 폐쇄 계획에 대해 탄광노조는 석탄 매장량이 바닥날 때까지는 탄광을 폐쇄할 수 없다고 저항했다. 파업은 1년 넘게 계속됐다. 노조위원장 스카길은 `어느 정도의 적자라야 탄광을 포기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적자는 무한정이라도 좋다’라고 대답했다. 1970년대 말 영국 여론조사에선 영국 장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총리가 아니라 스카길이 뽑힐 정도였으니 그의 위세를 알만하다. 1983년 탄광노조 파업은 꼬박 1년을 끌었다. 시위가 불법화되면서 마거릿 대처 수상은 기마경찰을 보내 진압했다. 부상자 발생에 항의하는 노조를 향해 대처는 `다음엔 탱크를 보내겠다’고 대응했다. 결국 탄광노조는 무릎을 꿇었다. 20만명이 넘던 조합원은 2000명 미만으로 줄어 사실상 소멸했다. 이 사건은 철밥통의 철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일본에선 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가 있었다. 일본판 민노총이다. 민간과 공공부문 노조의 70%를 지배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던 총평은 1975년 공공부문 파업권을 되찾겠다며 8일간 총파업을 벌이는 등 정치투쟁을 일삼다 조합원과 국민의 외면을 받아 스스로 무너졌다. 미국 자동차산업을 쥐고 흔들었던 전미자동차노조(UAW). 1980년대 중반 일본차·독일차 공세 앞에서 경영이 악화된 GM이 근로조건을 바꾸려 하자 UAW는 54일간 파업을 벌여 회사에 20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히고 경영진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결과 100년 가까이 세계를 주름잡던 `빅3’는 회사의 문을 닫고 수만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8일간 파업을 벌여 온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소속 철도노조가 파업을 전면 철회했다. `백기 투항’을 한 것이다. 쌍용차 사태 같은 폭력 저항도 없었고, 사측으로부터 민·형사상 면책을 약속받지도 못했다. 노동전문가들은 “1995년 민노총 출범 이래 최대의 패배”라고 평가했다. 민노총에 대한 조롱으로 들린다.
 이번 철도노조의 백기투항은 한마디로 `법과 원칙’의 승리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기관사 1만명을 양성하라”고 지시했다. 파업 기관사 전원해고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노조원들이 복귀하기 시작했다. 특히 파업의 주축을 이루는 기관사들 이탈이 결정적이었다. 이 대통령의 대응은 레이건 전 미대통령이 1980년 항공관제사 파업에 대처한 방식이다. 레이건은 항공관제사가 파업하자 “48시간내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 해고하겠다”고 선언했다. 1300여명만 복귀했고, 레이건은 복귀하지 않은 1만3000여명을 해고했다.
 이 대통령은 군병력을 투입할 것을 지시했고, 코레일 간부들은 전원 기관사자격증을 준비했다. 누적 적자 2조5000억원을 기록한 코레일 노조의 파업은 정당성은 없었다. 노조를 기다리는 것은 파업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이다. 80억원 이상의 손해를 배상해야할지 모른다. 징계도 기다린다.
 철도노조의 굴복는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에 반발하며 발전·가스 등 공공부문을 묶어 파업을 벌여온 민노총 투쟁력에 구멍을 냈다. 민노총은 공공부문 산하 노조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달 6일 총파업을 벌였다. 핵심이 철도노조다. 또 민노총 양대 축의 하나인 금속노조 현대차 노조위원장에 반 민노총 이경훈 후보가 당선됐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 9월 민노총을 탈퇴했다. 민노총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 초부터 인천지하철 노조, KT 노조 “민노총 지도부가 정치투쟁에 빠져 있다”며 탈퇴했다. 민노총 위기는 지도부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임성규 위원장은 쌍용차 노조 탈퇴한 직후 “지금의 위기를 치유하지 못하면 민주노총이 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원칙은 변칙을 이기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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