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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말하는 `일제고사’의 정식 명칭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다. 전교조는 이걸 `일제고사’라고 박박 우긴다. 명칭을 줄여 부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중립적으로 `학업평가’ 또는 `평가고사’로 불렀어야 했다. 굳이 `일제고사’라고 한 것은 “모든 학생들에게 일제히 시험을 강제해 모든 학생을 일제히 한 줄로 세우는 시험”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전교조는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은 어린 나이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며 나아가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반(反)교육적 처사”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일제고사로 교육현장에 파행이 빚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초등학교에서 조차 일제고사 대비 야간학습이 생겨나고, 학교 수업이 일제고사 과목 위주로 편성돼 교육의 균형이 깨진다는 것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이하 평가고사)”의 목적은 학생을 일렬로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보통이상-기초학력-기초미달”의 3등급으로 구분할 뿐이다. 학업성취도 등급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시행하고 있다. 학생의 학업성취 정도를 알려줌으로써 자신을 `객관화’하라는 교육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 평가고사의 목표는 학업평가를 통해 지원이 필요한 학생과 학교에 부족한 것을 보충해 줌으로써 학생 간, 학교 간 학력차이를 좁히는 것이다. 객관적 평가에 기초해 뒤진 학교를 지원함으로써 교육 격차를 줄이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서열화도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용어에 가까운 용어이다.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알려주는 것이 학생을 `서열화’하는 것일 수는 없다. 서열화는 말 그대로 구조적 칸막이로 인해 `계층 간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서열화가 이루어진다면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은 결코 낮은 구간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교육은 학력이 부진한 학생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따라서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본래적 기능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서열화 운운하는 것은 교육의 본래 기능을 방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교조 논리에 충실하면 서열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학업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경쟁’을 부정하는 것이다. 상처를 줘서 안 된다면 언제까지 학업평가를 미뤄야 하는가? `경쟁’을 끝까지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고학년 들어 처음 맞이하는 경쟁은 `충격’ 그 자체일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은 담담하게 맞아야 한다. 이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인 것이다.
`하이에크’가 일찍이 설파했듯이 경쟁은 일종의 `발견과정’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 경쟁을 미루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진로 탐색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대학진학률 85%’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일 수는 없다. 개인적 성공을 위해서는 사회에 조기 진출하는 것이 더 좋은 학생들마저 자신의 재능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해 `군집적 행동’을 한다.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은 학생들이 앞날을 탐색하지 못하도록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을 치는 것이다.
일제고사 방식의 전수평가 대신 표집 방식의 표본평가로도 얼마든지 학업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전교조 논리다. 그런데 전교조는 “일제고사는 학생들을 줄 세우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표본에 뽑힌 학생들만 줄을 세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전교조는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일제고사의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평가고사와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이 동일한 범주의 선택일 수 없다. 전교조의 선택권은 `시험을 거부할 수 있는 합법적인 경로’를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선택권이 `의무면탈’의 방편이 돼서는 안 된다.
전교조 학업성취도 평가반대의 기저에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학교 간 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학교 간 경쟁은 교원평가를 수반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학교 간 경쟁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학교 간 경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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