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알아 도리어 근심을 사게 된다는 뜻의 말, 식자우환은 여기서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어줍은 문자지식으로 고난을 겪는 일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일상적이던 유신시대에는 시위전력 때문에 취직을 할 수 없자 대졸자들이 고졸로 속여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가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취업을 했던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월급 때문에 가진 학력을 없는 것처럼 속여야 했던 것이다. 학력 하향위조 취업은 지금도 있다.
동네병원이 불황을 겪자 전문의들이 자격을 숨기고 일반의원으로 행세하는 세태다. 6월말 현재 전문의 자격증을 갖고도 이를 숨긴 채 일반 `의원’으로 개업한 의사가 4914명에 이른다는 보도다. 전문의 5명 중 1명이 자랑스러워야 할 그 자격을 숨긴 채, 격이 낮은 것으로 치부되는 `일반의원’으로 영업한다는 것이다. 도규계(刀圭界)에도 식자우환 현상이 나타나 전문의들 다수가 과정을 훨씬 적게 밟은 `일반의원’으로 `위장개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의는 의과대학 6년을 마치면 되지만 전문의는 다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도합 5년을 더 공부해야 되는데도 굳이 그 자격을 숨기는 이유는 뭘까. 특정과목만 취급하는 전문의에게는 찾아오는 환자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것저것 아무 병에나 조금씩 터치할 수 있는 일반의원이라야 감기환자, 피부병환자, 복통 두통환자 같이 잡다한 환자가 오기 때문에 그나마 병원 유지가 되기 때문이란다. 의료인도 너무 많이 배우면 오히려 `우환’인 시대가 열렸나 보다.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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