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들어와 페시미즘을 찬미한 사람은 쇼펜하우어(1788~1860)다. 그의 철학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인도의 베다철학의 영향을 받아 염세관을 기조로 한다. `삶은 끊임없는 욕구의 연속이며, 따라서 삶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쾌락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무욕구의 상태, 즉 삶에 대한 의지가 부정되고 형상세계가 무(无)로 돌아가는 열반(涅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인간 구원의 길은 자살만이 유일하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인식체계다.
하지만 2400여 년 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신이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지 스스로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살은 그 사람 자신에게는 부정(不正)이 될 수 없다고 해도 국가에 대해서는 하나의 부정이 아닐 수 없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역시 자살을 올바른 행동양식으로 보지 않는 견해다. 굳이 성현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살은 결코 미덕일 수 없다. 그런데도 끊이질 않는 게 자살이다. 어제 수능일 아침 대전서는 수능스트레스를 호소해오던 재수생이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도 있었다.
지난해 경북도내 자살자수가 945명으로 전국 5위였다고 한다. 인구 10만 명 당 35.4명이라 하니, 지난 94년 전국 자살률 24.2명으로 OECD회원국 중 `자살률 1등’을 했던 때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경북도내 자살통계에서 특히 눈이 가는 구석은 군위 76.8명, 청송 67.4명, 의성 63.1명, 예천 61.7명, 고령 46.4명 등 군 지역이 인구에 비해 비교적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홀로된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게다. 안타깝고 죄스러운 감회 속에 생각나는 일 하나가 있다. 생전에 자살을 그리도 예찬했던 쇼펜하우어 자신은 정작 18세기 당시로는 장수라 할 72세를 살다 자연사한 사실 말이다.
정재모/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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