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죽나무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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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죽나무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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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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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죽나무’를 사전에서 찾으면 `소태나뭇과의 낙엽 활엽교목’으로 돼 있다. 뿌리와 껍질은 약으로 쓰며 한자어로 저목(樗木)이라는 풀이도 곁들여졌다. 저(樗)자에는 `가죽나무’ 외에 `쓸모없는 물건’이란 뜻이 있다. 가죽나무를 `참죽나무의 잘못’이라고 설명한 사전도 있다. 그러니까 봄철에 딴 순을 데쳐 나물로 먹거나 찹쌀 풀에 버무려 꾸덕하게 말린 자반, 장아찌 또는 부각 등으로 먹는 그 `가죽’은 기실 `참죽’인 셈이다. 참죽나무는 `멀구슬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 어린 싹은 식용하며, 나무는 기구·농구의 재료로 쓴다’고 적어 `가죽나무’와 전혀 다른 종류임을 밝히고 있다.
 고려말 익재 이제현의 수필집 `역옹패설’의 `역’자는 나무 목(木) 변에 즐거울 락(락)자를 붙여 쓰는 글자로, 훈과 음이 `가죽나무 역’이다. 익재 자신은 `박잡(駁雜)한 글편들로 엮은 알맹이 없는 피(稗) 같은 책일 뿐이라서 이렇게 이름 붙인다’고 했다. 곧 `역옹稗說’은 `가죽나무 같은 (쓸모없는)노인’이 `피(稗)처럼 (가치 없이) 잘디 잔’ 소리를 심심풀이로 지껄였다는 겸사였다. 책 서문의 이 말을 근거로 `역옹패설’ 아닌 `낙옹비설’로 읽는 것이 저자의 뜻에 부합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는 모르겠고, 여기서 말하는 `역’의 훈 `가죽’은 곧 `참죽’ 아닌 `가죽(假-)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역옹패설’을 통해 익재는 원나라로부터 당한 치욕의 역사를 반성하면서 사대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자존의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조정중신이 아무리 몽고어에 능통하다 하여 통역 없이 사신과 몽고어로 대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 그 예다. 그런가 하면 `…대동강수하시진 별루년년첨록파’라 읊은 정지상의 저 유명한 `송인시(送人詩)’를 후대에 전해준 것도 이 책이다. 그런 점들로 이 책은 저자의 겸사와는 달리 국문학사에 섭새겨진, 대단히 소중한 민족문학 유산의 하나라 않을 수 없겠다.
 경북 경산지방에서 요즘 참죽나무 순 수확이 한창이라는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기억되는지라 두서없이 끼적여본 `역옹패설’ 편담(片譚)이거니와 `가죽’ 이야기를 적다보니 입안에 가득 돌던 그 자반 향이 묘연(杳然)히 그리워진다. 지난 2005년께 심은 어린 묘목이 자라 어느새 순을 수확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바쁘다니, 그 옛날 어른들로부터 봄철에 잃은 입맛 되살리는 데엔 그저 그만이라는 말 들으며 자란 호미곶자도 덩달아 `가죽자반’, 아니 참죽자반의 그 맛이 왈칵 그리워지는 것이다.  
  정재모/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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