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후보 `전태일재단’ 방문 막은 전태일 가족들
전순옥 “노동 현실 해결이 우선”
야당 “박정희 과오 책임져야”
박근혜 국민통합행보에 `찬물’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13일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해 분신자살한 평화시장 재단사 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조국근대화’의 기치아래 온 국민이 `압축성장`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고통을 세상 밖에 알린 그의 ’소신(燒身)’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상징이다. 전태일의 희생정신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재단에 오롯이 살아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국민통합행보’는 28일 전태일재단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 열사 유족들은 박 후보 방문에 앞서 성명을 내고 “일방적 통행이라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사절했다. 전 열사 동생 태삼씨는 “시급한 것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죽음이 있는 분향소에 분향하는 것이며 쌍용차 해결 후에 오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오전 전태일재단 앞에서 쌍용자동차와 기륭전자 노조원들이 박 후보 방문 반대 시위를 벌였다. 박 후보는 방문이 무산되자 재단 관계자들에게 “너무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미안함을 표시한 뒤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로 이동해 `전태일 동상’을 둘러봤다.
그러나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됨으로써 박 후보의 `과거와의 화해’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전망을 낳았다. 특히 12월 대선을 앞둔 후보의 행보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이해당사자와 야당의 시각이 큰 장애요소다. 박 후보가 전태일재단 방문 하루 전 전 열사 여동생이자 민주당 비례대표의원인 전순옥 의원이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박 후보가 좋은 취지로 재단을 방문하는 것이겠지만 이 나라 노동 현실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방문을 사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 의원은 “5ㆍ16쿠데타와 유신, 군사독재에서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전태일재단 방문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나가려는 박 후보의 의도가 문밖에서부터 냉대받은 격이다. 전 열사의 분신자살을 박 후보가 직접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박 후보가 42년 전의 과거를 모조리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 후보의 김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와 봉하마을 방문에 대해서도 야당이 흔쾌하게 반응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후보 등은 “환영한다”고 했지만 `친노’ 사이에서는 “정치쇼”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박 후보도 노무현 자살에 책임이 있다”는 무자비한 공격까지 터져나오기도 했다. 과거와 화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박 후보에게 과거에 대한 사과를 집요하게 요구해온 건 야당이다. 민주당은 박정희의 5·16과 유신의 책임을 박 후보에게 따졌고, 현재 국회에서 `유신사진전’이란 걸 개최하고 박 후보를 끌어 내리는 데 박 전 대통령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와 화해하려는 박 후보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고 이런 저런 조건을 달며 방해하고 있다. 더구나 쌍용차 해고근로자 중 자살자, 용산사태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참배를 요구하는 순서까지 정해주는 것은 지나친 요구로 들린다. 박 후보가 전태일재단을 방문한 뒤 쌍용차 유족과 용산참사 가족들을 찾을지 누가 아는가?
박 후보는 곧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공안사건인 인혁당 사건 관련자와 유족과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들과 야당의 눈에는 박 후보의 움직임이 `국민통합행보’ 아닌 `대선후보 행보’로 보이겠지만 언제까지 `과거사’를 이대로 두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박 후보의 행보가 정 눈에 거슬리면 민주당도 그에 상응하는 과거와의 화해를 꾀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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