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독서를 이야기할 적에 보통 떠올리는 낱말이 등화가친(燈火可親)과 신량등화(新凉燈火) 같은 사자성어다. 전자는 등불과 친할 만하다는 뜻으로, 가을밤은 등불 아래서 독서하기 좋다는 말이다.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가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며 지은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란 시구에서 유래했다. `가을이 되어 장마도 걷히고/서늘한 바람은 마을에 가득하다./이제 등불도 가까이 할 수 있으니(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간편가서권:簡編可舒卷;)’ 후자 역시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 아래 등불을 밝힌다는 말이니 그 말이 그 말이다.
등잔불과 독서는 실과 바늘처럼 붙어 있을 때 성어가 되는 것 같다. 중국 명나라의 구우(瞿佑)가 지었다는 소설집 `전등신화(剪燈新話)’란 책 제목에도 `등’이 들어갔다. 이 제목은 `심지가 불에 타 그을음이 나므로 잘라버리고 새 심지를 밀어 올려 가면서 읽는 새 이야기’라는 뜻이다. 또 등불을 켤 기름이 없어서 진나라의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은 눈빛에 비추어 읽었다는 고사도 결국은 독서와 등불 이야기다.
이번 주 초 모진 비바람 지나고 나더니 하늘이 사뭇 높아지고 깊어졌다. 밤이 낮 시간보다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추분이 내일이다. 다음 주엔 또 추석연휴가 들었다. 유별난 더위 끝에 올라온 두세 차례 태풍 겪고 보니 어느새 가을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요즘 같은 중추(仲秋)의 이모티콘은 누가 뭐래도 삼경(三更) 깊숙이 가득한 찌르륵 풀벌레 소리와 더불어 등잔불 심지 돋우며 독서하는 정경이다. 이 가을엔 욕심 부리지 말고 딱 한 권만이라도 읽자. 제목만 알고 평생 펼친 적 없는 책 중에서 제일 두꺼운 것으로 우선 한 권만 골라 읽어내자.
정재모/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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