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째 희망 전해
때론 심부름꾼…
상담사로 이웃들
벗되어 드리죠”
“칼바람 부는 추운 날엔 하루쯤 쉬고 싶지만 매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무거운 우편물 가방을 메고 37년간 열심히 뛰었습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산촌 구석구석에 희망을 배달하는 소천우체국 집배원 김정학(56)씨.
김씨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접경지인 봉화군 소천면 소재지에서 태어나 소천우체국에 발을 들여 놓은 후 가장 하위직인 집배원으로 올 6월말 정년을 앞둔 경북체신청내 최고참 집배원이다.
소천면은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맑고 차가워 열목어가 서식하는 경북도내에서 최고 오지다.
친구 소개로 지난 1969년 소천우체국에서 도급집배원으로 우편물 배달을 시작한 그는 주민들에게 38년째 희망을 나르고 있다.
김씨는 오늘도 소포와 우편물 등 300여점을 오토바이에 가득 싣고 칼바람을 헤치며 우편물을 기다리는 동네를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평생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겐 남다른 애환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애환이 하도 많아 무얼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기억이 삼삼하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일을 시작한지 며칠되지 않은 어느 겨울 퇴근시간 무렵 특사전보가 왔다. 특사를 가지고 우체국에서 24km나 떨어진 곳으로 배달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둘이서 자전거를 타다가 지쳐서 더 이상 갈 힘이 없어 녹초가 돼 길가에 주저앉았다. 오지 신작로에서 밤샘 추위와 싸워야 하는 위험한 상황인데 그날따라 운좋게 한 밤중에 시외버스가 왔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아마 그때 그 버스기사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집배원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 운전기사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1973년 집배원공채시험에 합격해 도급이란 꼬리표를 떼고 기능직 1호봉 정식 집배원으로 새 출발을 한 그는 자전거도 타지 못하는 `임기,두음,서천 등 한국 최고 오지를 맡았다.
여기는 자전거도 갈 수 없는 곳이 많은데다 자전거가 짐이 되어 걷는 일이 많았단다.
지름길을 택하다보면 위험한 기차터널을 자주 통과한다.
처음 맡은 배달코스는 차도가 없고 기차터널을 7개나 통과해야하는 난코스. 7개의 터널이 끝이 아니다. 터널을 빠져나와서 다시 서천리 방면으로 2~3km을 걸어서 낙동강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두음리에 다다른다. 소천서도 제일 오지다. 집배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동네다. 그나마도 요즘 같은 겨울이 오히려 다니기가 좋단다. 강물이 얼어서 바로 건널 수 있기 때문이란다.
여름 장마철엔 제시간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것은 어림도 없다.
옛날 우편배달부(집배원)는 잔심부름뿐만 아니라 인생 상담사 역할도 해야 했다. 아들이 군에 가고 며느리가~~~ 울먹이는 불쌍한 시골 아낙네. 땔감으로 소나무 한그루 베었는데 순경에게 붙잡혔 갔다며 아는 사람 없느냐고 우는 아저씨. 애환을 어찌 다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간고등어, 운동화, 제사장거리 등 농번기철 장보기 심부름은 기본이란다. 그 중에서도 약 심부름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
어떤 날은 우편물보다 심부름용 공짜 우편물이 더 많단다. 그게 시골 집배원이 덤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 그는 의무로 알고 묵묵히 했었다.
김 집배원은 우체국에 발을 들여 놓은 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끝이 안보이는 골짜기를 매일 걸었다.
그러니 발가락이 병든 적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그가 배달로 누빈 거리는 하루 평균 80여㎞다. 만 37년이 지났으니 지금까지 총 80여만㎞를 걷고 달린 셈이다. 가히 인간이 걷고 달리고 한 거리로는 놀랍다.
“이 먼 길을 큰 사고 없이 여기까지 왔으니 더 바랄 게 없지요. 동료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우편물 배달을 처음 시작하던 날과 달라진 것은 이마에 늘어난 주름살과 오토바이 뿐이지요. 하지만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산모퉁이를 돌 때는 찬바람이 코끝을 면도칼로 베는듯 하지만 집배원 생활을 마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강동진기자 dj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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