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 여기 있던 춘화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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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여기 있던 춘화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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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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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경주’… 장률 감독, 한 개인의 마음에 일렁이는 욕망 그리다

 친한 형의 부고를 듣고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베이징대 교수 최현(박해일). 문득 7년 전 죽은 형과 함께 봤던 춘화 한 장을 떠올리며 충동적으로 경주로 향한다.
 이미 남의 여자가 된 옛 애인 여정(윤진서)에게 전화해 경주로 와 달라고 부탁한 그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춘화가 있던 찻집을 찾는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춘화는 사라진 지 오래. 춘화를 고집스럽게 수소문하던 최현의 태도에 주인 윤희(신민아)는그를 변태 취급한다. 실망감을 가득 안은 채 여정을 만난 최현은 여정의 돌변한 태도에 또다시 실망한다.
 여정을 서울로 돌려보내고 나서 다시 찾은 찻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윤희와의 서걱거리는 관계를 청산한 최현은 지인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동석해 달라는 윤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경주’는 한 지식인의 짧은 여행을 그린 영화다. 1박2일 간의 여행을 통해 지식인의 위선, 사랑의 미묘한 감정, 사회적 윤리와 편견 등을 다룬다. 언뜻 보면 홍상수 감독이 잘 다루는 주제의 영화 같다.
 그러나 홍 감독의 영화와는 북극과 남극처럼 먼 영화들을 만들어온 재중 교포 장률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가는 영화다. 장 감독은 그동안 사회적인 부조리에 내몰린 개인의 힘겨운 삶을 건조하게 포착한 이른바 `리얼리즘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태도는 두 번째 작품 `망종’(2005)부터 여덟 번째 영화 `풍경’(2013)까지 일관됐었다.
 그러나 `경주’는 사회적 부조리를 마치 영화의 풍경처럼 그린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다른 지점에 선 작품이다. 영화에서 한국 사회의 그늘을 포착하고자 하는 감독의 시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마음에 일렁이는 욕망을 바라보는 데 영화는 주안점을 둔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욕망과 마음을 집요하게 파헤쳤던 장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당시’(2004)와 어느 정도 닮았다.(물론 `당시’보다 분위기는 훨씬 가볍고, 재미도 있다.)
 영화는 최현의 일렁이는 욕망을 따라간다. 반쯤은 추억을 느끼고자, 반쯤은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 찾아온 경주. 그러나 삶과 죽음이 마치 능처럼 부드럽게 이어진`경주’에서, 경주의 그 같은 속성을 닮은 윤희라는 여성을 통해 최현은 깨달음은 얻는다. 일탈을 통해 윤리와 도덕을 추구하는 일종의 성장담인 셈이다.
 지식인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은 영화에 커다란 재미 중 하나다.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이라는 최현의 이율배반적인 행동과 경주 계모임 회원 중 한 명인 박 교수(백현진)의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태도는 학계의 민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
 신민아는 `10억’(2009)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는데, 담백한 연기로 눈길을 끈다. 그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호평을 받을 것같다. 박해일은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능숙하게 연기한다.
 가학적이고 차갑고 비뚤어진 욕망들이 팽배했던 장 감독의 영화에 불편한 시선을 느꼈던 관객들이라도 이번 영화는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긴 상영시간은 부담스럽다. 연합
 6월12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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