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닷물 몸 담근 섬 되어 깨끗한 외로움을 담금질하고파
  • 이경관기자
차가운 바닷물 몸 담근 섬 되어 깨끗한 외로움을 담금질하고파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태 시인 다섯 번째 시집… 깊어진 성찰 언어로 건져 올려

 

그늘의 깊이
김선태 지음 l 문학동네 l 116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춥고 쓸쓸할 때/깨끗한 외로움 하나만을 데불고 추자도에 가리/바닷가에 조개껍데기처럼 엎어진 민박집을 얻어/아무도 몰래 꼭꼭 숨어 한겨울을 견디리/밤낮으로 바람 소리 파도 소리만 듣다 질리면/혼자서 사무치는 객수감에 몸을 떨기도 하리//(…)//굴복하지 않은 자존들이 섬들로 떠 있는 추자도/나도 그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근 섬이 되어/깨끗한 외로움 하나를 담금질하고 싶다”(‘추자도에서’ 중에서)
 바다의 풍광과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해온 김선태<사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그늘의 깊이’.
 그는 이번 시집에서 바다에 가라앉은 오래된 것들을 언어로 건져 올린다. 그 언어의 발설은 한층 깊어진 성찰에서 비롯된다.
 “아차 하면/순식간에 검푸른 파도가 삼켜버려/내로라하는 꾼들도 차마 근접을 꺼리는// 삶과 죽음이 나란한 직벽에서/대물과의 한판승부가/끊어질 듯 팽팽한 반원을 그리는 곳”(‘절명여’ 중)
 시인에게 바다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공간인 동시에 거친 풍랑에 무수한 뱃사람들의 생을 앗아가는 죽음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시를 통해 삶과 죽음이 나란한 고통스런 세상을 결연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뭍에서 청춘을 다 덜어낸 텅 빈 조각배로 떠밀려와 이제 더는 갈 곳 없이 유형의 섬에 닻을 내린 그네들”(‘섬의 리비도8-흑산도 작부들’ 중)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됐다. 그 중 2부는 ‘섬의 리비도’ 연작으로 구성, 시적 모티브인 바다에 대한 관심을 해양민속생활사로 확대했다. 12편의 연작시에서 그는 바다의 포용성을,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미지와 나란히 배치했다.

 “가난이라는 그늘이 싫어 필사적으로 아버지라는 철조망을 뚫고 달아났네// 슬픔이라는 그늘이 지겨워 흑흑거리며 어머니라는 눈물의 강을 헤엄쳐왔네// 폭력이라는 그늘을 되밟지 않으려 아버지라는 권위를 자진 철회하고 싶었네// 원망이라는 그늘을 남기지 않으려 어머니라는 모성 앞에 무릎 꿇고 싶었네// 허나, 가난이나 슬픔이나 폭력이나 원망의 그늘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네//(…)//오랜 삭임 끝에야 드리운다는 말갛고도 흰 그늘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네”(‘그늘’ 중)
 시 ‘그늘’은 자기고백적인 시로 가난, 슬픔, 권위, 원망 등은 그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한(恨)’의 정서다. 삶이라는 긴 터널을 살아온 그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흰 그늘’의 시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의 간극은 그에게 언어를 토해내게 하고, 그 언어는 시가 된다.
 “구부러진/지리산 아랫마을 팔순 할미의 허리는/유장하게 굽이치는 지리산 능선을 닮았다/가만 보면/저녁 능선 위에 걸린 초승달과도 겹친다// (…)// 구부러진다는 것은 돌아간다는 것/늘그막에 어린아이가 되어 친정집에 들듯/원점으로 휘어져 회귀하는 일이다// 머잖아 지리산이 할미를 불러들일 것이다”(‘구부러지다’ 중)
 팔순 할미의 허리는 고달픈 삶을 살아온 우리네 부모와 닮았다. 또 그 이미지에서 거침없고 당당하게 살아온 민중적 삶의 역동성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 역동성 뒤에 감춰진 민중의 한과 슬픔은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팔순 할미의 외로움과 더해져 더욱 절절해 진다. 행간과 행간 사이의 여백은 그 아픔을 다독이는 시인의 배려이다.
 엄숙과 난해로 물든 현대시 속에서 거침없고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구축한 김 시인.
 그는 바다와 바닷사람들의 생을 ‘시’라는 자신만의 집에 품는다. 초라한 그 오두막집엔 짭쪼름한 바다냄새와 사람냄새가 가득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