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노골적인게 양반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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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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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음란서생'

 생각해보시게나. 누구에게나 은밀한 욕망은 있지 않은가. 그 욕망을 쉬이 드러내느냐, 속으로 꽁꽁 감추느냐의 차이일 뿐. 더욱이 허울 좋은 양반이란 족속은 말이지, 우리가 아다시피 겉으론 공맹(孔孟)의 도를 읊조리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 노골적이지 않은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보면 대충 알 만하지.
 바로 그 ‘스캔들’의 시나리오를 썼던 김대우 작가가 감독이 돼 만든 영화 ‘음란서생’(제작 영화사 비단길)은 그러한 양반에 대한 조롱에 가까운 풍자와 함께 사실은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는 멜로 영화라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선조의 해학과 풍자 정신을 답습한 듯한 장면들이더군. 독자들에 의해, 시청자들에 의해 결말이 좌지우지되는 현 세태를 정쟁과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조선시대에 대입해 웃음을 자아내고, 인터넷이라는 신매체로 인해 삶의 방식이 달라진 21세기의 댓글 문화가 당시에도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 않나.
 또한 그러한 풍자를 전하는 영화의 대사가 참 맛깔스럽다네. 한석규의 깨끗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오는 군더더기 없는 대사가 일품이더구만. 오달수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야 더 말할 것이 없네.
 그러나 무엇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건 김민정의 미모라네. 한복을 입은 우아하면서도 교태로운 자태가 ‘천상선녀’라 하면 과한 칭찬일지 모르나, 하여튼 이제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지.
 김윤서(한석규 분)는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문장가. 허나 당파간의 정쟁으로 집안이 뒤숭숭함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양반이지. 그는 어명을 받드는 자리에서 정빈(김민정)을 만나게 되네. 살짝 치뜨는 커다란 눈망울과 교교한 달빛 같은 여인의 낯빛을 가슴 속에 담아두는 것이 눈에 보인다네. 그렇다고 절대 그런 속마음을 입 밖에 낼 그가 아니지.
 김윤서는 정적 가문인 의금부 도사 이광헌(이범수)와 함께 어명을 해결하고, 실로 우연한 계기에 황가(오달서)네 가게에서 읽기 참으로 민망한 난잡스런 책을 접하게 되네. 그 가게는 그릇을 팔지만 실은 해적판 소설을 공급하는 곳일세.
 허허 참, 이상하게 그 글이 윤서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급기야 ‘할 일 없어, 소일삼아’ 음란하기 이를 데 없는 책을 쓰게 되지. 더군다나 그림에 재주가 많은 이광헌을 꼬드겨 신묘망측한 체위가 등장하는 삽화까지 넣게 되니. 허울에 가려져 있던 두 양반의 솔직한 속내가 글과 삽화를 통해 기쁘게 드러나는 것이지 않나.
 말 그대로 책은 낙양의 지가를 올리듯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네. 그것도 주로 점잖은 사대부집 규방으로 말이야.
 정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정빈은 윤서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네. 겁쟁이 윤서는 그러한 정빈의 유혹을 애써 뿌리치지만, 광헌이 ‘자신은 본 것만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야심한 밤 정빈을 황가네 가게로 초대하네.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뻔히 느껴지지 않나.
 영화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네. 지금까지 윤서가 왜 음란소설에 빠져들었고, 정빈을 가까이 할 듯 하지 않을 듯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는지가 갑자기 호흡이 빨라지는 후반부에 가면 설명이 된다네.
 영화 ‘왕의 남자’ 이후 기대작답게 매끄럽고 윤택한 영화임에 분명하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흠잡을 결이 없지. 잘 조화된 세트와 어여쁜 의상은 또 어떻고.
 허나 영화 초반이 좀 지루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겠네. 무릇 만든 이들이야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놓고 싶으나, 보는 이들은 압축이 돼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게 만들어주길 바라지 않나. 2시간20여분의 상영 시간이 좀 길게 느껴지거든.
 인간의 이중성을 꼬집으면서 진실한 마음이 으뜸이라고 훈육하는 게 바로 ‘음란서생’이라네.
 아참, 잊을 뻔 했네. ‘스캔들’처럼 이 영화도 꼭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앉아서 봐야 하네. 재미있는 장면이 덤으로 주어지거든.연합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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