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림사
  • 정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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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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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역사 속에 창림사(昌林寺)란 절이 있었다. 오늘날엔 경주시 배동 남산기슭에 석물 몇 점과 함께 그 터만 남아있다. 전문가가 아니면 존재조차도 아는 이가 많지 않지만 결코 예사로운 절터가 아니다. 여러 기록들로 추측컨대 최소한 원성왕 7년(791) 이전에 건립된 절이라고 한다(두산백과). 전설의 신필(神筆) ‘김생(金生)이 절의 비문을 썼다’는 후대의 또 다른 기록으로 미루어 그렇다. 경주 남산 자락에 있었다는 이 절이 예사로울 수가 없는 까닭은 신라 천년역사와 문화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는 데 있다.
 6촌 촌장들이 어느 날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양산(楊山) 아래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서기가 돌며 백마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가가 보매 백마는 승천해버렸고 붉고 커다란 알 하나가 있어 쪼개자 사내아이였다. 아이를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다. 나중 그를 왕으로 추대하니 곧 신라 천년역사를 연 박혁거세다. 사람들은 나정에서 멀지 않은 남산(南山) 서쪽 기슭에 궁실을 지어 알에서 나온 성인을 모시니 ‘지금의 창림사다.’라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창림사는 신라시조 혁거세의 탄강설화의 현장이요 최초의 신라궁성인 거다. 시조왕의 내외가 거처하다가 다른 데로 옮겨가고 그곳에다 지은 절이었으니 역사적 의미가 작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거기엔 불교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게 평가되는 유물 몇 점도 현존하고 있다. 삼층석탑, 쌍두귀부(雙頭龜趺), 석등연대(石燈蓮臺) 같은 석물들이다. 모두가 본래대로 온전히 보존된 건 아니지만 전하는 부분만으로도 소중한 보물들이라고 한다.
 창림사 삼층석탑이 며칠 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1867호)로 지정됐다. 기단면(基壇面)에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같은 팔부신중(八部神衆)이 돋을새김돼 공예적 가치가 큰 돌탑이다. 1976년 망가진 채로 발견되어 복원과정을 거친 지 근 40년 만에 비로소 대접을 받게 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이라 않을 수 없다. 이참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경주 지방 곳곳에 널려 있을 또 다른 ‘창림사지’와 망가진 석탑·불상 같은 미발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다. 60~70년대에 나름대로 한차례 훑었지만 촘촘한 발굴과 정비작업을 다시 한 번 펼쳐야 하지 않겠나 하는 거다. 지난 시절에 찾을만한 건 다 찾았노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흙속에 묻혀 있는 문화재는 의외로 많더라는 게 우리가 보아온 문화재 발굴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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