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미힐미, 배우로서 존재감 느끼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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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힐미, 배우로서 존재감 느끼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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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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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7가지 인격 가진 캐릭터 소화… “내게 ‘너 정말 잘했다’ 말해주고파”

 “사실 후폭풍이 클 것 같아 되게 겁나요. 나중에 생각이 날 텐데, 그때가 되면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아요.”
 부담도 없었고, 자신도 있었고, 잘 마쳐서 고맙고 다행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하지만 그는 잘 안다. 이러다 얼마 후, 사람들 사이에서 잠잠해질 때쯤 조용히 그리고 강력한 후폭풍이 오롯이 그의 몫으로 닥쳐오리라는 것을.
 배우 지성(38·사진)이 담담하게 진행해 나가던 인터뷰 말미 결국은 이렇게 고백을 했다.
 지금이야 실감도 안나고 다 비워내 멍한 상태지만, 7가지 인격을 가진 범상치않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쓰레기통을 한 번에 말끔히 비워내듯 자신을 리셋(reset)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 터다.
 MBC ‘킬미힐미’를 통해 연기인생 16년의 절정을 맞이한 지성은 최근 인터뷰에서 “현실에서 곧 아빠가 되기에 빨리 차도현이라는 캐릭터를 떠나보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킬미힐미’라는 작품과 차도현이라는 캐릭터는 제3자가 보기에도 배우 지성에게 쉽게 작별을 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듯하다. 그만큼 그는 오래 기다렸고, 마침내 그 순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 “차도현, 지금이니까 가능했던 연기”
 
지성은 ‘킬미힐미’를 통해 평생 받을 찬사를 한꺼번에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늘 노력하는 연기자였고, 준비된 배우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찬란한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1999년 데뷔 때부터 하나하나 계단을 밟으며 올라왔고 마침내 ‘좋은 배우’가 됐지만 특급 스타가 되기에는 늘 5%가 부족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이기도 했고,운이 안 따라서이기도 했다.
 그러다 16년 만에 마침내 기회가 왔다. 그런데 끝까지 드라마틱했다. ‘킬미힐미’는 돌고돌아 막판에 지성의 손에 안겼기 때문이다.
 “(제게 캐스팅 제안이 오기 전) 시놉시스를 미리 봤어요. 7가지 인격이라고 하는데 제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꼭 하고 싶었는데 처음엔 인연이 안 닿았다가 나중에 제게 왔죠. 캐스팅이 늦게 돼서 촉박한 시간 내에 준비해야 했지만 자신 있었습니다. 또 김진만 PD님이 저를 믿고 지켜봐 주셨기에 제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지성은 바로 지금이었기에 자신이 차도현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우가 한 작품 안에서 남녀노소의 희로애락을 동시다발적으로 연기하는것은 웬만한 내공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때가 온 것 같아요. 저도 길다면 긴 연기 인생을 보내면서 조금씩 쌓아온 게 있고 그러면서 한결 여유로워진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하면 제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지를 이제는 알게 됐어요. 7가지 인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인격을 집중해서 연기해야 했는데 그게 가능해진 거죠.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연기를 해낸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지금이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저도 방황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빨리 차도현을 만났다면 이만큼 못해냈을 겁니다.”

 ◇ “맥주 한잔 마시고 싶어하던 페리박의 절박한 모습 가슴 아파”
 
1999년 SBS ‘카이스트’로 데뷔한 지성은 ‘올인’ ‘왕의 여자’ ‘애정의 조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뉴하트’ ‘태양을 삼켜라’ ‘김수로’ ‘로열패밀리’ ‘보스를 지켜라’ ‘대풍수’ ‘비밀’까지 쉼 없이 페달을 밟았다. 일찌감치 한몫하는 배우로 올라섰지만, 욕심과는 달리 ‘한방’이 터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잊고 있던 순간 ‘킬미힐미’가 터졌다.
 지성은 “인기와 관심을 너무나 바랐을 때는 오지 않더니 다 내려놓으니 이런 날이 온다”고 담담히 말했다.
 배우가 되고 싶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라도에서 상경한 지성은 배우가 되기 위해 세트장에 몰래 들어가 대본을 훔치는가 하면, 잘 곳이 없어 지하철역(여의나루역)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밑바닥 경험도 해봤고, 늘 자신보다 위에서 각광받는 스타들을 보며 타는 목마름도 느껴봤던 그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날 7개의 인격 연기가 가능했고, 그에 따른 찬사도 거머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그런 면에서 페리박을 연기할 때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페리박이 맥주 한잔 절실히 마시고 싶어할 때 꼭 못 마시고 쓰러지잖아요. 그냥 보면 웃긴 장면이지만 그게 사실은 정말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에요. 정말 하고 싶고, 바라던 것을 눈앞에 두고 못하는 거잖아요. 딱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근데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고 모든 것은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페리박도 나중에 사라질 때야 비로소 맥주 한잔을 맛있게 마시잖아요. 제가 페리박을 연기할 때 가장 애드리브를 많이 했는데 마지막 대사도 애드리브였어요. ‘늘 웃고 좋은 생각만 하소. 딱 한 번 사는 인생잉께. 건강하소’. 그 대사에 제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힘들어도 힘내며 웃고 살자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바랄 때는 오지 않던 인기와 찬사가 마음을 비우니 이제야 왔다는 지성은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침을 꼴깍 삼키기만 했던 페리박의 절박한 마음을 연기하면서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간들을 통과해 오늘에 이른 자로서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킬미힐미’는 제가 배우로서 존재하고 있구나 느끼게 해준 작품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만족합니다. 또 이번 연기를 하면서 제 마음도 치유한 작품이에요. 저는 그동안 저를 사랑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저를 사랑할 줄 알게 됐어요. ‘너 그동안 정말 잘했다’는 말을 제게 하고 싶어요.”

 ◇ “우리 모두 다양한 모습 간직하고 살아”
 
차도현은 7가지의 인격을 가진 특이한 캐릭터였지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는 노랫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거창하게 얘기해서 인격이지 사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다양한 모습이있잖아요. 화날 때, 슬플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다 다른 모습이죠. 그것을 극대화해서 개별 인격처럼 표현한 것이 이번 드라마고요. 요섭이에게는 살면서 정말 힘들 때의 심정을 투영한 것처럼, 드라마일 뿐이지만 시청자가 7가지 인격에 공감할수 있었던 것은 사실은 누구에게나 그런 다양한 모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배우가 남들과 다른 것은, 남들은 평상시 가볍게 혹은 짧게 지나갈 감정들을 극대화해서 형상화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록 연기지만, 가짜지만,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고 난 후유증은 배우가 홀로 감내해야 하는 그만의 몫이다.
 지성은 “긴 여운을 안고 살기엔 할 일이 많다”고 했지만 그에게나, 시청자에게나 특별했던 차도현을 연기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뒤 밀려오는 허탈함은 그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 될 듯하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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