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최근들어 ‘제2의 IMF 사태’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의 경제상황이 1997년 1차 외환위기 당시와 기분 나쁘게도 닮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1997년 외환위기는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시작됐다. ‘한보그룹’이 부도나더니 ‘국민기업’이라던 기아자동차가 나자빠졌다. 이어 삼성자동차도 부도나고 대우그룹이 붕괴했다. 무수한 금융기관이 망했다.
지금 상황도 그때 못지않다. 웅진그룹, STX그룹은 부도가 났고, 동부그룹,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중견기업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재계 순위 3위 SK도 계열사별로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멀쩡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불과하다는 가혹한 평가가 나올 정도다. 대기업이 연쇄 도산하면 금융기관은 직격탄을 맞는다.
더 불길한 것은 가계와 재정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도 가계와 재정이 그런대로 건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펀더멘털이 무너지고 있다. 가계부채 1000조원, 공공부문 부채 821조원이다.
2007년 말 665조원이던 가계부채 잔액은 2012년 말 964조원으로 늘었다. 자영업자 부채 등을 포함하면 가계부채는 1100조원을 넘는다. 이명박 정부 5년간(2008~2012년) 가계부채가 그렇게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1분기에 962조원으로 줄었으나 다시 증가세다. 공공부문 부채를 포함하면 정부부채는 이미 GDP(국내총생산) 대비 80%를 넘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올 4월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는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내 최고 민간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도 올 10월 같은 맥락의 경고를 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이 삼성그룹 사장단 대상 특강에서 “기업과 정부·사회의 위기의식으로 극복했던 외환위기와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5년차 이후 한국 기업의 체력소진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IMF’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 ‘제2의 외환위기’를 경고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주력 사업들은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수요 감소를 겪고 있고 중국 기업들로부터 무섭게 추격을 당하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진 업종을 사전에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업종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되고 대량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량 실업이 발생한 후에 백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탄한 것은 바로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에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11일 “한국의 기업대출은 유동성이나 수익성이 나빠 금융안정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비효율적인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촉진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제2의 외환위기’를 예방하는 조치가 화급하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제2의 외환위기’를 막는 데 필요한 정부의 정책을 우리 국회가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경제살리기 위한 법안, 노동개혁법을 심의해야 할 야당은 당권 싸움으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그 탓에 국회는 개점휴업상태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경제관련법안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해서라도 처리하기를 압박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은 “내 성(姓)을 갈겠다”며 버티고 있다.
16년 전 외환위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만약 제2의 외환위기가 터지면 이번에는 그 책임의 절반 이상이 야당에 돌아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당권싸움으로 눈 앞에 닥쳐오는 외환위기를 외면했다는 비난이 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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