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오이 호박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한때 병충해에 골머리를 썩였다. 주로 흰가루병 덩굴마름병 같은 병해충으로 덩굴과 잎이 하얗게 말라죽는 병이었다. 진딧물과 응애 총채벌레 같은 것들이 잎과 줄기에 달라붙어 매번 농사를 실농시키곤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1980년대 후반 이 땅에 등장한 식물이 이들 병충해에 강한 걸로 알려진 가시박이었다.
덩굴이 4~8m 뻗어나는 1년생 덩굴식물인 가시박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병충해에 강하다는 특징을 일찍이 잘 알고 있던 식물학자들은 호박 오이농가들이 병해충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이것으로 접목묘의 대목으로 사용하게 했다. 이것이 가시박이 이 땅의 귀화식물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추상적 경위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무슨 일에나 좋은 점이 있으면 안 좋은 점도 같이 따르게 마련인가. 가시박은 들어온 지 30여 년 남짓에 이미 몹쓸 식물생태계의 골칫덩이가 되어 있다.
하지만 물가를 좋아하는 가시박은 근래 낙동강 강둑 같은 데에 그 세력을 급격히 확산해 가는 추세다. 이에 안동시가 생태계 환경보존을 부르짖으며 이의 대대적 퇴치에 나섰다고 한다. ‘낙동강 토종생태계’를 살리자는 의지이리라. 그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긴 하지만 생각대로 이 얄미운 식물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때 돼지풀과 미국자리공 같은 것들도 몹쓸 식물로 여겨 그 퇴치에 열을 올린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하지 않았는가. 동식물이 다 마찬가지일 거지만 처음 외국 것을 들여올 땐 천만번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는 사실, 여기서도 또 한 번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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